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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어찌하여 - 이 첫마디는 본시의 전체적인 분위기, 곧 애가적 성격을 결정하는 표현이다. 다윗이 '어찌하여'라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원수들의 박해로 인해 고통받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강림(역사)하시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불신앙적인 외침이라기 보다는 하루 속히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신앙적인 외침이라고 볼 수 있다(Lange, Delitzsch).
멀리 서시며 - 즉, 거리를 두고 계신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지금 방관자가 되어 계신다는 말이다.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 이는 하나님께서 비겁하게 몸을 숨기셨다는 말이 아니라 침묵을 지키시며 자기 백성의 위급한 사정을 돌보고 있지 않고 계시다는 말이다(애 3: 56, Delitzsch).

=====10:2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窘迫)하오니 - 악한 자의 교만은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함에 있다. 저들은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기에 가련한 자를 심히 괴롭하는 악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 즉, 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보복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Craigie). 여기서 '군박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달라크'(* )는 '급히 쫓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용어의 명사형 '달레케트'(* )는 '화병', '열병'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문자 그대로 원수들이 추격해 오는 것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원수들의 박해로 말미암아 열병과도 갈은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음을 하소연하는 말이다(Delitzsch).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 하나님의 보응 원리에 입각한 간구의 내용이다.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결국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응하는 것일 따름이다(욥 34:11;잠 24:12;롬 2:6).

=====10:3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 의인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과 정반대로 악인은 그 자신의 욕심을 자랑한다(Rawlinson). 여기서 '소욕'이란 악인이 바라는 어떤 것이든지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교만을 가리킨다(Alexander). 이는 하나님을 무시한 악인들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 여기서 '탐리하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체아'(* )는 본래 '자르다', '떼어내다'라는 뜻으로 '부당 이득을 취한 자'라는 의미를 가지는 용어이다(Delitzsch). 때로 이 용어는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개인적인 이익만을 얻으려는 지도자들의 욕망에 적용되어 쓰이기도 하였다(삼상 8:3;사 56:11;렘 22:17, TWOT). 따라서 이는 단순히 치부하는 자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권력 등의 수단으로 불의하게 재물을 착취하는 자를 의미한다. 한편, '배반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레크'(* )는 본래 '축복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혹자는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라는 구절을 '축복받을 때마다 멸시한다'라고 해석한다(Kay, Hengstenberg). 그러나 이 용어는 '축복하다'는 의미 이외에 보다 발전된 의미로서 '축복하고 떠나다', 즉 '작별하다', '멀리하다'는 뜻을 가진다(욥 1:5, Delitzsch). 이렇게 볼 때 이 구절은 불의로 재물을 착취하는 자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점점 싫어하고 떠나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0:4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하며 - 혹자는 '감찰한다'(* , 다라쉬)는 말을 '보응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13절;9:12, Craigie). 물론 '감찰한다'는 말이 악인에게 적용될 때 '보응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전혀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는 악인들의 불신앙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 '감찰하다'를 '보응하다'란 의미로 제한시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 악인은 하나님의 존재뿐 아니라 그분의 간섭과 심판까지도 부인한다. 이는 악인들이 인간 중심적 사고로 꽉 차 있음을 가리킨다.

=====10:5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 이는 악인들이 악을 행함에 있어서 전혀 흔들리지 아니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이나 인간을 두려워함이 없이, 또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대담하게 악을 행했다는 표현이다(Rawlinson, Calvin, Craigie).
주의 심판은 높아서 저의 안력이 미쳐지 못하오며 - 악인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와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로써 악인은 자기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저는 그 모든 대적을 멸시하며 - 악인은 이 땅 위에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공격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간들의 위협을 무시해 버린다. 여기서 '멸시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푸아흐'(* )는 본래 '숨쉬다', '불다'(blow)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코방귀를 뀌다', '픽 웃어버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Calvin).

=====10:6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 즉, 많은 사라들이 파멸할지라도 자기는 언제든지 형통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악인이 마음속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자기 스스로 어떠한 재앙도 물리칠 수 있다는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다(49:11;사 56: 12, Calvin).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 악인은 고통없는 행복만을 꿈꾸고 있다. 심지어 그는 죽음조차도 잊어버린 듯하다(Rawlinson). 이처럼 마땅히 고통을 받아 죽어야 할 자가 고통이나 죽음을 당하지 않고 있음에 대해 시인은 못마땅히 여기며 하나님의 간섭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10:7
그 입에은...혀 밑에는 잔해(殘害)와 죄악이 있나이다 - 이는 악인이 그 입술로 의인을 시험에 들게 한 사실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혀 밑'은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이 표현은 악인이 단순히 악한 말을 할 뿐만 아니라 고러한 말 자체를 즐긴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Craigie).

=====10:8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 여기서 악인은 산적으로 비유되었다. 산적이 산기슭 으슥한 곳에 숨어 기다리다가 무죄한 자를 죽이고 강탈하듯이 악인은 의인을 해(害)하기 위해 은밀하 음모를 꾸민다. 이 비유에서 강조되고 있는 악인의 성격은 교활함이다. 한편, 여기서 '외로운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헬카'(* )는 '권세있는 자' 와 반대되는개념으로 '연약한자', '무력한자', '불행한 자'를 의미하는 발이다. 이와같이 악인은 연약한 자들을 자기의 권세로 강탈한다는 것이다.

=====10:9
사자가...가련한 자를...가다리며 - 사자는 난폭한 성질 때문에 종종 행악자에 비유된다. 한편, 난폭한 사자와 같은 악인에 의해 고통받는 '가련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니'(* )는 '괴롭히다', '압제하다'는 뜻의 동사 '아나'(* )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압제당하는 자', '고통당하는 자'를 의미한다(TWOT). 악인은 이같이 압제당하는 자를 또다시 압제하고자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 악인은 사자에게 비유되었다가 또다시 사냥꾼에 비유되고 있다. 여기서 '자기 그물을 끌어'란 '자기 그물 안으로 유인하여'라는 뜻이다. 다윗은 앞 구절에서 악인의 광포한 성격을 나타냈으나 본 구절에서는 악인의 교활한 성격을 묘사하고 있다.

=====10:10
저가 구푸려 엎드리니 - 이 구절의 주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혹자는 이 구절의 주어를 악인으로 본다(Ewald, Delitzsch). 그렇다면 이 말은 악인이 의인을 잡기 위해 바싹 엎드린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 구절의 주어는 하반절에 나오는 '외로운 자'인 듯하다. 그렇게 볼 때 이 구절은 '외로은 자', 곧 무력한 자가 악인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장면을 묘사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었다. 즉, 악인은 무력한 자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이로 인해 무력한 자는 악인의 먹이가 되어 엎드려져 있는 것이다(Hengstenberg, Craigie, Wette).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 - 이는 앞 구절과 병행 구절로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강포'란 유형적인 폭력뿐 아니라 무형적인 폭력도 가리킨다. 이러한 폭력에 의해 연약한 자는 무력하게 당하고 있다.

=====10:11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하나이다 - 4절에 이어 또다시 악인의 사상을 소개한 부분이다. 그들의 사상은 하나님께서 인간사(人間事)에 도무지 관여하지 않는다는 악한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아무런 가책도 없이 연약한 자들을 괴롭힐 수 있었던 것이다.

=====10: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 이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간섭을 요청하는 말이다. 시인은 의로운 자를 억압하는 저 악인들의 횡포에 대하여 울분을 품고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즉각적으로 개입해 주시기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의 근원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3:7;7:6 주석을 참조하라.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 하나님께서 손을 드신다는 것은 (1) 하나님께서 능력을 발휘하신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2) 대적들에게 보복을 선언하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Craigie).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 여기서 '가난한 자'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9절의 '가련한 자'와 같이 '아니'로서 '억압당하는 자'를 가리킨다. 한편,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억압당하는 가련한 자를 잊고 계신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나타내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10:13
하나님을 멸시하여 - 하나님께서 이 세상사에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악인의 사상은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멸시하여'란 표현은 신성 모독 행위와 같이 하나님을 능욕(凌辱)함을 의미한다.

=====10: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 하나님의 간섭에 대한 시인의 믿음이 더욱 확고해진 모습이다. 특히 1절의 내용과 비교하여 볼 때 시인이 기도 중에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역사하심에 대한 믿음을 크게 회복한 사실이 역력하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 이는 악인의 사악한 사상과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악인을 감찰하셨음을 확신하는 말이다. 이로써 시인은 악인의 사상이 실로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잔해'와 '원한'은 연약한 자가 악인으로부터 받는 온갖 해(害)와 슬픔을 말하는 것이다.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 이 구절(* , 레테트 베야데카)을 직역하면, '당신의 손안에 놓여져 있다'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이 문제가 주의 손안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인간사(人間事)의 모든 결정권, 또는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만 의지할 뿐이다.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 외로운 자는 인생 중에 아무도 의지할 자를 찾지 못한 자이므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 여기서 '주'는 문자적으로 '당신' (* , 아타)이다. 히브리 문법에서 2인칭 대명사가 사용되는 경우는 강조형이다. 따라서 시인은 오직 '당신'(주)만이 돕는 자임을 강조한 것이다(Rawlinson). 한편, 여기서 '외로운 자'는 그 형편이 비슷한 고아에 비유되었다. 하나님은 '고아'를 지금까지 돌보아오셨으므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외로운 자'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본절에서 시인은 고통 중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연약한 자의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아니할 것임을 확신한 것이다(Craigie).

=====10: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 이 표현은 저주시의 일반적인 내용 중 하나이다. 곧 악인의 기세 등등한 힘(권세)을 꺾어달라는 요청이다.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 악인의 사상(4,13절)과는 달리 시인은 하나님께서 악인의 모든 죄악을 찾으실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없기까지'라는 말은 원문을 정확히 전달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 용어는 본 구절에서 분리시켜 하나의 독립구로 해석해야 한다. 즉, 본 구절은 '악한 자의 악이 발견되지 않게 하소서'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악의 세력의 완전한 파멸을 요청하는 말로서 그 세력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해 달라는 간구이다(Rawlinson, Craigie, Delitzsch, Lange).

=====10:16
여호와께서는 영원 무궁토록 왕이시니 - 이는 악한 자의 허무성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악한자의 권세가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그것은 얼마가지 못하여 파멸하고 만다. 반면, 하나님의 통치는 일시적으로 행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영원히 섭리 가운데 반드시 적기(適期)에 나타난다.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최종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 '열방'(* , 고임)은 하나님을 대적한 이방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들을 멸망시키심으로 당신의 거룩한 땅(혹은 교회)을 정화(淨化)시키신다.

=====10:17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 시인은 본 시를 확신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한다. 여기서 '겸손한 자'는 9절의 '가련한 자'와 원문상으로 같은 단어 '아니'이다. 이 표현과 함께 본 시에 언급되는 '가련한 자'(2, 9절), '외로운 자'(10, 14절), '가난한 자'(12절), '압박당하는 자'(18절) 등은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의인에 대한 동의어이다.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 '예비하시며'(* , 쿤)는 본 문맥에서 '확고하게 하다', '견고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의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만드셨다는 말로서(51:12;112:7, Lange) 악한 자가 사라졌으므로 겸손한 자는 아무런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는 뜻을 암시해 준다(Calvin).

=====10:18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 여기서 '세상에 속한 자'란 히브리어로 '에노쉬 민 하아레츠'(* ) 로 직역하면 '땅으로부터 온 인생'을 의미한다. 여기서 '인생'(* , 에노쉬)이란 단어는 인간의 연약성을 나타내는 말이다(9:19 주석 참조). 의인을 핍박하는 그 인생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정반대로 땅에 속한 인생이기에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 한편, 본절의 전체적인 내용은 선지서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메시야 왕국에 대한 묘사와 흡사하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을 종말론적 시각으로 본다(Kr면).

 

 

 

  악인이 형통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개탄하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을  간구하는 본시는 바로 앞의 9편과 아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 시는 9편과 같이 '알파벳 시'  해당하는데 특별히 9편에 연속되는 알파벱 '라멧'(*  )으로 시작된다.  표현 방법에 있어서도 두 시편은 똑같이 4행 대구로 되어 있고, '환난 때'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1절;9:9). 또한 두 편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강조로  끝을 맺고 있으며(18절;9:20), 열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16절;9:5, 15, 17, 19, 20).  그러나 9편은 승리에 대해 감사하는 내용이 주조(主潮)를 이루지만, 본시는 주로 의인의 고통에 대한 탄식으로 되어 있다. 또한 두 시편은 모두 그 자체로 완전히 독립적인 시형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두 시가 하난의 통일된 시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결정할 수 없으나 다만 동일한 저자에 의해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것임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시는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비탄시'(indivisual lament)로 분류된다. 비탄시는 보편적으로 고난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탄식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신뢰에 대한 고백과 간구로 끝난다. 본 시편도 마찬가지로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땅 아래 짓밟히는 듯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절박한  탄식이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으며(1-11절), 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간섭과 도우심을 확신하며 간구하는 내용이 주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12-18절).
  한편 본시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에 대해 알려 준다. 시인은 초두에서 세상자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권에 대해 약간의 의문을 제기하는 형식으로 본시를 시작하고 있다(1절). 즉, 악인들이 그들의 권력으로 연약하고 가련한 의인들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어찌하여 하나님게서는 이러한 현실을 보고만  계시는지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을 완전히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의 간섭이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가련한 자들을 위해 탄식하였을 뿐이다. 이에 반해 여기 소개되고 잇는 악인들은 하나님의 간섭을 완전히 부인하고 있다(4절). 심지어 저들은 하나님의 존재조차도  부인하며 악을 행하는 데 담대하였다. 그러나 하나니은 저들의 생각과 같이 존재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시며 또한 이 세상을 방관하는 분도 아니시다. 그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은 인간들의 모든 행위를 보시고 그 해우위대로 보응하시는 이 세상의 주관자이시다.
  시인은 기도 중에 이러한 진리를 다시 확인할 수있었다. 그가 처으에는 하나님의 간섭에 대해 의심이 없지 않았으나 기도 중에 하나님의 말슴을 기억하고 이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고통스러운 현실 가운데 하나님이 간섭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한다(12절). 이것은 그의 믿음의 회복이었다. 이제 그는 탄식하지  아니하고 본시를 확신 가운데 마무리짓느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마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간섭에 대해 간혹 의심할 때도 있으나 하나님은 언제나 이 세상자마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의 믿음을 더욱 단련시키고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 정당함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간섭에 대하여 때로 의심할 수는 있으나 원망으로 진전되기 전에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이제 교만하고 불경건한 악인이 야하고 가련한 자를 괴롭히는 현실을 고발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하고 있는 본 시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악인의 형통에 대한 탄식(10:1-11)
  현실의 고통으로 인하여 우울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는 본 대목은 (1) 하나님의  무관심에 대한 탄식(1, 2절), (2) 악인의 사악한 무신론적 사상(3-6절), (3) 악인이  의인을 핍박하는 잔인한 모습(7-11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 중에서 우리는 시인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던 고뇌의 이유를 발견할  수있다. 시인은 악인이 득세하고 의인이 핍박당하는 악한 상황에 처해 잇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하나님이시라면 어찌 이와 같은 모순이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악인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한 자였다(3, 4절). 악인은 불법으로 재물을 탈취하였으며 자기의 욕심을 사랑하였고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조차 부인하였다(3, 4절). 그들의 양심은 죄악으로  무디어졌고 하나님의 백성들, 곧 의인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하며 억압하였다.그들은 포악한 강도와 같았고(8절), 굶주린 사자나 잔인한 포수와도 같았다(9절). 그런데  어찌하여 악인들은 계속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이 땅 위에서 부귀와 권세를  누리고,  반대로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선한 양심으로 살아가는 의인들은 고통을 당하며 악인들의  조롱거리가 되는가? 시인은 이러한 모순된 현실에 대해 탄식하며 절규하엿다. 그러나 그의 탄식은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에 의해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심으로 반드시 공의로운 심판을 결행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1) 의인이라고 하여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복을  반드시 받는 것은 아니며, (2) 악인이 의인보다 현실마의 복을 누릴 수도 있으나 결국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여 모든 모순이 해결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2. 하나님의 개입에 대한 확신(10:12-18)
  모순된 현실에 대한 탄식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는 본  대목은 (1) 악인에 대한 심판(12-15절), (2)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16-1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잇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게서 원수에 대해 복수해 주실 것을 간절히 요청한다.  핍박자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자이다(13, 14절). 그러므로 하나님게서  공의로운 분이시라면 반드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심판하실 것이라고 시인은 믿었다.  시인은 여기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여호와께서는 폭도들의 잔인한  행동과  성도의 억울한 사정을 감찰하시고 반드시 해결해 주는 분이시다(14절). 시인은 모순된 현실로 인해 노심 초사(勞心焦思)하던 마음을 버리고 하나니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확신을  얻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악인의 세력을 완전히 파괴시키 것을 간구한다(15절).  이어서 시인은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의 소원을 응답하셔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성도를 구원하실 것을 확신한다(17, 18절).
  우리는 이러한 시인의 확신을 통해 압박받는 성도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발견할 수 있다(잠 22:22, 23). 하나님은 성도의 억울한 사정을 감찰하시고 반드시 해결하여 주신다. 우리는 핍박받는 상황 속에도 위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하며 확신에 찬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이러한 시인의 마음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피조물의 겸손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 '가난한 자'의 의미.  12절에서 시인은 고통당하는 의인을 가리켜 '가난한 자'(* , 아니)라고 표현하였다. 이 용어는 '대적'이라는 말과 대조적인 개념으로 여기에서 사용되었다. 히브리어로 이에 해당하는 동의어들을 살펴보면,'아니'(*,2,9절;9:18;14:6;18:27;8:10; 72:2;74:19 등), '에비온'(* 40:17;70:5;72:4;86:1;109:22), '달'(*    , 41:1;72:13;82:3), '헬카'(*        , 8,10, 14절)등이다.
  성경의 용례들을 살펴볼 때 이 단어들은 대적(원수)들의 파괴적인 힘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는 자들을 의미하나다. 이들은 대적드의 강한 억압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의 의로우신 도우심만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이러한 용어들은 보편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자', '비탄에 빠진 자', '억압당하는 자'. '낮은 자',  '언약한  자','가난한 자',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들은 성전 안에 피하여 하나님의 간서블 간청하기도  하며,  시온을  자주  방문하는  자들로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체(intimate communion with God)를 나눈다. 따라서 이들은 '주의 이름을 아는자', '주를 찾는 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9:10).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강림하셔서 크신 능력으로 그들은 구원하시며 그들의 삶을 새롭게 해주신다. 이와같이 간난한 자는 언제난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탁월한 존재와 그 능력을 전파하는  증인들이  된다(17절;9:18;18:27;22:26;25:9;37:11;69:32;147:6:;149:4). 이들은 또한 시온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으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드리는, 영적으로 서로 연합된  자들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들의 하나님이시다. 아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기억의 대상이 된다(40:17). 시온은 바로 이들을 위해 세워진 피난처이다(사 14:32). 더 나아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은 모든 고난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하나님 백성들의 그림자이다.
  한편으로, 가난한 자는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자들, 예를 들면, 고아나 과부같은 자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즉, 먹을 양식이 부족한 자(132:15), 탈취당한 자(사3:14), 땅이나 재산이 없는 자, 쫓겨난 자,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악인의 본질. 본시에 등장하는 악인은 가난한 자의 대적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의 택하신 왕을 위협하고(44:10;74:3ff.),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반역을 감행한다(83:2;89:10, 51;92:9;110:1, 2). 또한 이들은 강포를 행하는 사특한 자이다(54:3). 이들은 의인을 쫓는자(pursuer, 7:1)요, 헐뜯는 자(41:7;56:2;57:3)이며, 의인과 원수된다(35:19;38:19;41:7;69:4;86:17)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행위는 구역 성경에서 (1)포위하며 공격하는 군대(3:6;27:3;55:18;56:1; 59:4;62:3), (2) 먹이를 사냥하는 포수(7:15;31:4;35:7, 8;57:6;64:3;140:5).,  (3)  먹이를  따르는  맹수(7:2;22:12, 13;27:2;35:21)등에 비유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대적들이 '불법'(*      , 아웬)을 해하는 것으로 나타난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아웬'은  마술(magic)이나  우상  숭배를  의미하는  말이다(Mowinckel).  따라서  혹자는  대적을  가리켜  '마술사'(magicians)라고도   하였다(Birkeland). 이렇게 볼 때, 대적이란 단순히 의인을 핍박하고 억압하는 자라기보다는 악령의 맛루적인 힘에 이끌려 의인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kraus).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의 대상자들이다(7:12ff.;9:15;141:10).
  구약 성경의 용례를 살펴보면, 대적은 이스라엘을 대적한 이방인들, 특히    그중에서도 이방의 왕이나 군대 장관을 가리킨다.하지만 국가적인 의미보다는 개인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으므로 의로운 개인을 핍박하는 악인들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또한 대적이란 말은 국가적인 갸념이나 개인적인 개념을 뛰어넘어 보다 근본적인  악의  세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대적이란 악의  원형(archetype)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인간을 파멸로 이끌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더헙히는 모든  악의  세력의 총칭이다. 구약 성경에서 의인들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대적들이 완전히 멸망되기를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이다(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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