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 원문에는 `주' 와 `여호와'가 함께 기록되어 있는뎨 이는 강조형이다. 이 구절을 원문에 맞게 해석하면 `나의 영혼이 여호와 당신만을 우러러 보나이다'라는 뜻이다(Briggs). 즉, 다윗은 지금까지 실제로 도움이 되지도 못하는 우상이나 인간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만을 바라보았다는 말이다(Perowne). 따라서 이 구절은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온전한 인내와 간절한 소망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은 이러한 그의 순전한 믿음을 본시의 모두(冒頭)에 밝힘으로써 그의 기도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Craigie).
=====25:2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 이 부끄러움은 원수들에게 굴복 당함으로 인하여 받을 수치를 가리킨다. 다윗은 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 여호와를 의지했으며 또한 지금 확신 가운데서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
=====25:3
본절은 기도에서 확신으로 넘어오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다윗은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스리심에 있어서의 불변하신 속성을 발견한 것이다.
주를 바라는 자는...수치를 당하리이다 - `주를 바라는 자'는 원문상으로 `주를 바라는 모든 자'이다. 이에 따라 본절은 개인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함께 곤궁에 처한공동체를 위한 기도라고 혹자는 주장한다(Rawlinson, Briggs). 그러나 이는 분명히 보편적인 진리를 개인에게 적용시킨 예라고 보아야 한다(Lange, Craigie). 왜냐하면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시는 개인적인 기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라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와'(* )는 간절한 기대감으로 고대하는 자, 끈기있게 소망 중에 바라며 참는 자를 의미한다(TWOT). 이러한 기다림의 사람은 언약이 성취되는 날을 맞이하게 되며(37:9; 사 49:23), 기쁨으로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사 2 5:9).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 `속이는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가드'(* )는 `배반자' 또는 `범죄자'를 의미하는 말로서 `불신앙의 사람', `반역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자는 앞 구절에서 언급된 `주를 바라는 자' 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인물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볼 때, `무고히 속이는 자'는 다윗 개인을 괴롭히는 자라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거역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은 의인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기를 바라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침묵만이 그들의 유일한 생존의 근거이기 때문이다(Craigie).
=====25:4
주미 도틈 내게 보이시고 주미 깊을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도'와 "주의 길"은 뗘호와의 쁑범 안에 담겨진 하나넘의 뜻, 곧 하나님이 왼하시는 삶의 자세와 하나님의 섭키를 의미한다(0#4, 48뻐##. 8소에 성도는 이 '도'와 '길'을 잘 알다가도 큰 시련이 닥치면 이잊어버리기 쉽다. 패냐하면 시련의 중압감이 너무도 크게 느껴지지 때문이다. 위대한 모세도 큰곤궁에 빠졌올 때에 이와똑같은 호소를 하나넘께드렸던 것이다(출 7 } #, 6W1#2W2). 마찬가지로 시련당하는 다욋은 잊어버린 주의 "도'와'길'을 다시금 알 수 있도록 간구할 수밖에 없었다.25 } 5 내 구웜왜 하나넘이시니 내가 총일 주틈 바리나이다. 여기서 "내 구왼의 하나넘이시니'란 과거의 경험올 꾀상향 말이며, '내가종일 주를 바라나이다'란 현재의 소원을 표현한말이다((#퇘). 이처럼 다욋의 기도는 과거의체혐올 바탕으로 헌재의 ]난에 대처한 믿음의기도였다.25 } 6 주미 긍츨하심과인좌하심이 영웡부터믿었츠볘니. 다욋은 여기서 하나님의 자비의 속성올 내세우골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어떠한행위나 공로로는 하나넘의 도욤올 받올 수 없었기매문이었다. 그는 과거에 하나넘께 인정받을 행위보다는 인정받지 못할퍼악을 더 많이 행하였던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럴지라도 한 가지 부인하지 못할 사실올 알] 있었으니 그것이 곧 하나념의 자비하신 성품이었다. 여기서 '인자하심"이란 히브키어로 '헤세드"(벽00)이며 이는 언약적인 사랑을 뚱한다. 그리곶 이 말이 "영왼'이라는 맡과 함께 언급되었으므로 다욋은 하나넘의 영원 블변하신 언약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이분명하다. 즉, 다욋은 그에게 임한 시련올 극복하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영욍 불변하신 언약에호소하] 있는 것이다(1버2, (<#8).아6 } 7 내 소시(4%뺘)의 죄와 허믈. 뗘기서"내 소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우라이'#"에3#> )는 어린 소년 시절을 가키키는 것이 아니라보틔 청년 시절올 지칭할 때 사웅된다. 따라서본 구절은 유년 또는 소년 시절의 죄에 대한진술이 아니라 청년 시절의 죄를 의미한다((<리). 기억지 마시고이기억하시되. 여기 사웅된두 동사는 다욋의 이중적인 기도를 보여 준다.즉, 소극적으로 자신의 소시의 죄와 허물올 기억지 마실 것올 간구하였으며, 적극적으로 하나넘의 인자하심(언약적 사랑)으로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적극적인 기도를 위해서 소극적인 기도는 필수적이었다. 채냐하면 죄는 하나넘과사람사이를 가로
그러나 앞에서와 같이 여기에서
=====25:5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 이는 마음의 청결과 행위의 순결함으로 인해 받는 복을 말한다. 이 복은 여호와의 보호 안에서 번성하는 복이다. 이에대한 모범적인 실례로서 우리는 오벧에돔의 집에 임한 여호와의 복을 들 수 있을 것이다(삼하 6:11; 대상 2 6:4, 5).
구원의 하나님께 의(義)를 얻으리니 - 여기서 말하는 `의'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것 자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Craigie).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이것은 실제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칭의'를 뜻하는 것이다(Rawlinson, Briggs).
=====25:6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의 자비의 속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어떠한 행위나 공로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과거에 하나님께 인정 받을 행위 보다는 인정받지 못할 죄악을 더 많이 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럴지라도 한 가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그것이 곧 하나님의 자비하신 성품이었다. 여기서 `인자하심'이란 히브리어로 `헤세드'(* )이며 이는 언약적인 사랑을 뜻한다. 그리고 이 말이 `영원'이라는 말과 함께 언급되었으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영원 불변하신 언약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즉, 다윗은 그에게 임한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영원 불변하신 언약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Calvin, Craigie).
=====25:7
내 소시(小時)의 죄와 허물 - 여기서 `내 소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우라이'(* )는 어린 소년 시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통 청년 시절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따라서 본 구절은 유년 또는 소년 시절의 죄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청년 시절의 죄를 의미한다(Craigie). 기억지 마시고...기억하시되 - 여기서 사용된 두 동사는 다윗의 이중적인 기도를 보여 준다. 즉, 소극적으로 자신의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실 것을 간구하였으며,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언약적 사랑)으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적극적인 기도를 위해서 소극적인 기도는 필수적이었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과도 같은 것이어서 이것을 회개하지 않는 한 적극적인 기도는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은 먼저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후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에 호소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회개-> 간구'라는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엿볼 수 있다(Calvin).
=====25:8
1-7절에서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였던 다윗은 본절에서부터 하나님께 대한 보다 철저한 신뢰를 보여 주고 있으며 아울러 찬송의 성격을 가미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와 같이 여기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강조되고 있는 반면에 다윗 자신의 죄악성이 보여지고 있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 여호와의 `선하심'(* , 토브)은 그 안에 악한 것이 전혀 없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구체적으로 범죄한 자기 백성들에게까지라도 좋은 것만을 공급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모습을 강조한다. 또한 여호와의 `정직하심'(* , 야쇠르)은 바른 성품, 곧 굽지 않은 공의로운 성품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은 거짓을 물리치시는 그의 말씀 가운데 잘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 하나님의 두 성품, 곧 선하심과 정직하심은 죄인을 교훈하시는 데 완전한 조건이 된다. 만일 이 두 성품 중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죄인들은 하나님의 올바른 인도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정직하시기만 하고 선하시지 못하다면 오직 도덕적으로 완전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은택을 입을 거이며 반대로 하나님정직하지(공의롭지) 못하시다면 하나님은 죄인들을 심판할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신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 `죄인'은 다윗의 원수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한 바 있기(7절)때문이다. 물론 다윗이나 그의 원수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지만 반면, 그의 원수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교만한 죄인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도움을 입을 수 있는 자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겸소한 죄인이지 자신의 죄에 대해 무감각하여 회개하지 않는 교만한 죄인이 아니다(Craigie)
=====25:9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 여기서 `온유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나윔'(* )은 `가난한 자', `곤란 당하는 자'를 의미하는 말이나, 7절과 연결시켜 볼 때 여기서는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겸손한 자'를 의미한다(Calvin, Rawlinson).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0:12-18 강해 `가난한 자'를 참조하라. 한편, `공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 )는 `다스리다'는 의미의 동사 `솨파트'(* )의 파생어로, 이는 여기서 `하나님의 통치의 권위', `하나님의 섭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Calvin, TWOT).
그 도를 가르치시로다 - `가르치시리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마드'(* )는 단순히 교육한다는 의미 외에도 강하게 훈련 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TWOT,삿 3 :2; 대상 5:18; 아 3:8; 호 10:11)
=====25:10
여호와의 모든 길 - 이는 여호와께서 가시는 길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길이다(4절). 따라서 이 길은 8 절의 `선하시고 정직하신 도'를 의미한다.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 뵨 구절은 언약의 성격을 보여 준다. 모든 언약은 그 언약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그 언약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인간 사이에 체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순종이 없는 한 하나님의 언약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에게 복이 되지못한다. 그러나 인간이 순종할 때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유효하며 그 결과 인간에게 미치는 복은 인자와 진리이다.
여기서 `인자'(* ,헤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말하며, `진리'(* , 에메트)는 한번 약속한 바를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 또는 확실성(certain- ty)을 의미한다(Delitzsch)
=====25:11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 다시금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또 다시 회개하게 된 동기는 10절에 기록되어 있다. 즉,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언약의 원리를 기억했을 때 그는 지난날의 중대한 죄악을 회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Craigie). 10 절에 묘사된 하나님의 언약의 복은 순종하는 자에게 임한다. 그러나 그는 순종 대신 죄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지금 큰 곤경에 처해있다. 따라서 그는 이 죄악을 미워하며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죄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온'(* )은 구체적으로 우상 숭배, 간음등을 의미할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포괄적인 의미로 마음과 행동의 모든 죄를 의미하는 듯하다(Delitzsch).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사하소서 - `주의이름'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계시되어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주의 자비하신 성품을 인하여 사하소서'란 의미로서 7절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25: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 이 질문은 24:3의 `여호와의 산에 오롤 자...누군고'라는 질문과 유사하다. 그러나 24:3의 질문은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자의 조건에 대한 것인 반면, 본 구절은 지혜있는 삶, 곧 하나님의 보호아래에서 세상의 모든 환난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지혜의 근원인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있다(잠 1:7). 그러나 이 지혜의 근원을 소유한 자는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다윗은 이 지혜의 근원을 소유할 수 있는자,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라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묻고 있는 듯하다(Calvin).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 여호와를 경의하는 자는 지혜의 영에 의해 감동을 받아 선하고 복된 길을 택하게 된다(Craigie).
=====25:13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 `평안히'는 히브리어로 `베토브'(* )인데 이는 `좋은 것 가운뎨', `선한 것 중에'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거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린'(* )은 `숙박하다', `밤을 지내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를 직역하면, `저희 영혼은 선한 것 중에 밤을 지내며'가 되는데 이는 영적인 행복을 시사하는 말이다(Rawkubsibm, Dekutzscg).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 앞 구절이 내적인 복을 의지한다면 이 구절은 외적인 복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구절은 `약속의 땅'에서 그 자손들이 크게 번성할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Briggs, Craigie, Delitzsch). 한편, 신약 성경에서 약속의 땅은 영적으로, 즉 하나님 나라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5:5; 계 5:10).
=====25:14
여호와의 친밀함 - 여기서 `친밀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소드'(* )는 본래`비밀 회담'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여호와께서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아무런 비밀도 없이 그의 뜻을 보이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Briggs, Craigie, Delitzsch). 따라서 이 말은 `비밀스런 교제 ' , `밀접한 관계'를 뜻한다.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 `보이시리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 )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아는 것, 곧 체험적 지식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저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비밀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체험하고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Delitzsch).
=====25:15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의 원리를 충분히 증거했기 때문에 다시금 원점으로돌아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한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仰望)함은 - 다윗의 눈이 여호와께 고정되어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다윗의 끈기있는 기도와 그의 인내하는 믿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내 발을 그믈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 다윗은 자신의 처지를 포수의 그믈에 걸린 새에 비유함으로써 자신이 원수들에게 포위되어 있음을 나타낸다(10:9)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할 때 자신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25:16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 이 표현은 죄로 인한 다윗과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에 대한 것이다. 죄로 고민하는 자는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을 그러한 처지에서 구할수 없음을 알기에 외로움과 괴로움을 느낀다.
내개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그가 세상에서 위로받지 못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멀리하신 결과이며 이는 다윗의 죄악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이로써 그는 세상에서 당하는 외로움과 괴로움을 종결짓고자 하는 것이다.
=====25: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 `근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르'(* )는 본래 좁은곳, 협곡을 의미하는 말로서 여기서는 그 마음에 여유가 없는 상태. 곧 고통의 상태를 뜻한다. 이와 같은 고통의 상태는 다윗의 죄악, 또는 원수듸의 핍박과 깊은 연관이 있다.
=====25:18
나의 곤고(困苦)와 환난을 보시고 - 여기서 `곤고'는 죄의 결과로 다윗에게 임한 마음의 고통을 의미하며, `환난'은 2절에 언급된 원수들에 의한 고퉁을 의미할 것이다. 이로 보아 다윗이 죄의 결과 안팎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 그의 곤고와 환난은 그의 죄로 인해 발생한 것이므로 다윗은 무엇보다도 본시에서 자신의 죄를 반복적으로 회개하고 있다.
=====25:19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 여기에는 원수들의 숫자와 그들의 잔인성이 강조되어 있다. 다윗이 이처럼 많은 원수에계 잔인할 정도로 핍박당하는 현실을 호소한 것은 억압 당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기 위함이었다(Calvin). 따라서 본구절에는 끌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다윗의 애절한 신뢰가 잘 반영되어 있다. 한편, `심히 미워함이니이다'는 문자적으로 `맹렬한 미움으로 미워하다'이다. 이는 다윗을 죽이지 않고는 도저히 분(憤)이 풀리지 않는 원수들의 무서운 증오심을 나타낸 것이다.
=====25:20
내가 주께 피하오니 - 이 표현은 15절의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이란 표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이 두 구절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돈독한 신앙을 보여 준다.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 이에 대해서는 2절 주석을 참조하라.
=====25: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 `바라오니'는 3절의 `바라는 자'와 같은 어근을 가진다. 이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20절에 이어 여기서도 다윗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 여기서 `성실'과 `정직'은 마치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使者)와 같이 의인화 되어 있다. 이 `성실' 과 `정직'은 과연 누구의 성품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혹자는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주장하고(Dahood), 혹자는 다윗의 성품이라고 주장한다(Craigie, Calivn, Delitzsch). 전자(前者)의 주장에 따르면, 이 성품들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도우시는 근거로서 이는 도저히 다윗의 성품이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본시에서 이미 다윗은 성실과 정직과는 거리가 먼 죄인으로 언급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성실과 정직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솔로몬에게 증거하신 바이다(왕상 9:4). 물론 이러한 다윗의 성품들은 하나님의 경우와 같이 완전히 무죄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려는 다윗의 결의, 또는 범죄하였을지라도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는 그의 결심을 의미하는 것이다(4, 8, 11절).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본 구절에서 다윗의 기도는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자만에 근거해 있지 않고 반대로 회개와 경배로 하나님을 향하는 그의 믿음에 근거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Craigie). 이에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절 주석을 참조하라.
=====25:22
하나님이여...구속하소서 - 본절은 본시의 특징인 알파벱의 배열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본시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은 개인적인 탄식과 간구를 골조로 하는 본시의 특성과 거리가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본절을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1) 국가적 재난을 당하던 시기인 바벨론 포로 시기에 개인적 탄식시인 본시를 국가적 탄식시로 사용하기 위해 본절을 맨 뒤에 후기(後記)한 것이다(Cr- aigie, Briggs). (2) 자신을 위해 간구했던 다윗이 마지막으로 국가 전체의 위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간구한 것이다(Calvin, Rawlinson, Delitzsch). 이러한 추측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본절에 적합한 해석인지 확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3:8에서도 이와 흡사한 형식이 사용되었으나 다윗의 저작임을 부인할 수 없었듯이, 본구절 역시 다윗이 자기 백성에 대한 관심을 마지막에 언급한 것으로 이해된다.
본시는 표제문에 나타난 대로 다윗에 의해 쓰여졌는데 저작 시기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윗은 이 시에서 하나님과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호소하고 있다. 본시의 내용은 (1) 현재의 고난에 대한 호소(1, 7절),
(2) 하나님의 인도 원리(8-14절), (3)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간구(15-22절) 등으로 구
성되어 있다.
이 시편의 형식적 특징은 히브리어 알파벱 순서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약간의 예외
는 있으나 대체적으로 각 행의 첫자들이 히브리어 문자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시는 모두 9개로서 '알파벱 시'라고 불리워진다(9, 10, 25, 34,
37, 111, 112, 119, 149편). 본시는 이러한 기교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내용과
사상이 무질서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다.
한편 본시를 '비탄시'로 보는 견해는 존재하지만 여호와를 신뢰하는 '기도시' 분류
하는 것이 적합하다. 다윗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음을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확신한다. 그는 수난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비탄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만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신앙을 노래한다.
이제 다윗의 묵상과 기도가 들어있는 본시를 세 단락으로 나누어 각각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용서와 인도에 대한 간구(25:1-7)
다윗에게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한 기도가 들어있는 본 대목
은 (1) 위기 중에서도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신앙인의 모습(1-3절), (2) 하나님의 인
도를 구하는 겸손한 기도(4-7절)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사정을 적나라하게 말하며 하나님께 호소한다. 다윗은 원수들
의 핍박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는 상황 속에서 연속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단지 원수의 모함이나 악의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죄 때
문이라고 생각하여 참회의 심정으로 가득 찬 고백을 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고난에
처하게 되면 '하필이면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한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불평하고, 하나님의 진리보다는 자신의 조그마한 선행을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본시에서의 다윗은 이러한 자연인의 모습을 훨씬 초월하고 있다.
그는 평화롭던 시기와 동일하게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당면한
고난을 극복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인간이나 우상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뺏
기지 않았다. 다윗의 마음은 오로지 하나님을 향하여 일편 단심(一片丹心)이었다. 그
는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선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고 있었
다(3절).
또한 여기에서 다윗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방법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는 역경을 당하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불리한 환경, 못마땅한 상황을 바
라보지 않고 먼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성찰하였다. 다윗은 자신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시험의 원인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젊
은 시절에 지은 자신의 죄를 기억해 내고 하나님을 회개한다(7절)). 다윗은 자신의 과
거와 현재의 죄를 고백하면서 그 죄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한다(요일 8:1). 그러
나 그는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인자를 믿고 먼저 하나님과의 올
바른 관계 개선을 위하여 하나님의 지도와 교훈을 겸손히 소원하였다(4, 5절). 여기서
하나님게 도움을 구하는 다윗의 자세는 채권자의 태도가 아니라 채무자의 입장이다.
그는 하나님께 지은 죄악의 중대함을 절감하였으므로 마땅이 용서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거만하게 굴지 않았고 반대로 오직 하나님의 영원하신 성품, 곧 긍휼과 인자하
심에만 호소하였다(6절).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자세에서 환나을 당한 성도가 마땅히
취해야 할 구체적인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성도는 (1) 어떠한 불리한 환경 속에
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하는 신앙과 (2)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의
심각성보다 먼저 자신을 성찰하는 겸손과 (3)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만을 호소하는 온
유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2. 언약의 원리에 대한 상고(25:8-14)
계시된 주님의 성품에 근거를 두고 용서와 인도를 간구하는 본 대목은 (1)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칭송(8-10절), (2)죄악에 대한 용서 간구(11절), (3) 언약 백성의 자세
(12-1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윗은 이 부분에서 잠시 기도를 멈추고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하여 하나님의 속성을 묵상한다. 다윗은 무조건적으로 하나님께 고집을 부리
는 유아기적(幼兒期的) 신앙인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게 자기의 소원 성취를 위해 기
도하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간구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에게
맞추려 하지 않고 반대로 자기의 뜻을 하나님께 맞추려고 힘썼던 것이다.
다윗은 여기서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의 원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며 묵상하였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다윗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영원한 복을 약속해 주셨다. 그
언약의 표어는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
러한 언약은 하나님에 의해 주도적으로 선포되었으므로 언약에 대하여 순종하는 자에
게는 반드시 풍성한 축복이 주어질 것이다. 사실 본문에 다윗이 사용한 '온유한 자'(9
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12절)와 같은 단어는 언약적 문맥에서 이해해야 하는 말
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말들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자', 곧 '순종하는
자'에 대한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바로 이러한 자를 보호하시고
섭리(攝理)하심을 믿었다. 그 결과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체험하며(10
절), 영혼의 평안과 후손들의 번성(13절), 그리고 풍성한 은혜의 체험(14절) 등을 수
납하게 된다. 다윗은 묵상중에 이와 같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원리, 곧 순종
의 법칙을 재발견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지난날의 과오
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절실하게 요청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묵상을 통
해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발견하게 된다. 즉, 먼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자각을 하고
이어서 자신의 죄를 애통하고 회개한 후 하나님께 진실한 간구를 드려야 한다.
3.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간구(25:15-22)
본 대목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회개한 후 더욱 확신있게 된 다윗의 간구가 드러
난다. 이 부분에서 다윗은 이전보다 더욱 진실하고 담대하게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게
아뢰고 있다.그는 자신의 괴로운 심저을 숨김없이 하나님께 털어놓았다. 즉, 외롭고
괴로운 자신의 심정(16절), 군심에 휩싸인 불안한 마음(17절), 수많은 원수들에게서
받은 무서운 증오로 인한 두려움과 수치심(19절) 등 자신의 딱한 처지를 낱낱이 호소
한다. 이러한 그의 솔직한 호소에서 우리는 자애로운 아버지에게 위기에 처한 아들이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는 매우 감동적인 부자 상면(父子相面)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다윗은 이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깊은 교제를 누리고 있다(14절).
다윗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속 사정을 다 아뢸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그의 회개였다.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느하나님의 진리에 입각하여 지난날의 중
대한 죄를 회개하였다. 그 결과 가로막혓던 하나님과 그 사이의 장벽은 무너지고 새로
운 언약의 관계가 맺어지게 되었다. 영적인 상태가 이처럼 회복되자 그는 하나님께 직
접적이고도 강렬한 요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6-22절에서 그는 다발적으로 '나를 긍
휼히 여기소서'(16절), '나를 곤난에서 끌어내소서'(17절),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18절), '내 원수를 보소서'(19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20절), '나를 보호하
소서'(21절), '구속하소서'(22절) 라고 요구하였다. 죄를 회개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심판자가 아니라 자애로운 아버지였다. 그는 위기에 처한 아들로서 강하고 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구원을 담대히 요구할 수 있었다. 아울러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한 다윗의 기도는 이스라엘을 환난에서 구출해 달라고 하는 간구에까지 확대된다(22절). 우리는 여기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곧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해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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