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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기념케 하는 시 - 동일한 표졔어가 70편에도 나온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대적자들의어떤 시도들과 목적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다윗에계 임했던 다른 형태의 시련들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동질성을 찾을 수 없다. 한편, 라틴 벌게이트역(Vulgate)과 70인역(LXX)은 유사하게 '안식일을 기념하기 위한 다윗의 시'라고 수정 번역된 표제어를 붙이고 있다. 본 표제어의 원어는 '르하즈키르' (* )로서 문자적인 뜻은 '기억케 하기 위하여'이다. 즉, 이 표제어하의 시편 내용은 기억케 하는 목적을 위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 시편 저자 다윗은 자신이 과거에 경험했었던 바 독특한 체험, 본 시편이 밝히고 있는 경험의 기억을 되 살려 전달함으로써 다른 독자들도 유익한 교훈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본 시편을 기록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창 40:14 왕상 17:18 겔 21:24). 그리고 본 표제어에 대한 이와 같은 번역은 다른 학자들의 번역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즉, '하나님과 자신과의 기억을 전하기 위하여'(gesenuius)라는 것과 '본 시편은 다윗과 그의 범죄와, 그리고 용서 구함의 기억이 주는 교훈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Grotus)라는 번역이 이러한 견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주의 노 - '노'는 히브리어로 '케채프'(* )인데 이 단어가 새로 사용된 것 외에는 본절과 6:1은 그 사용된 단어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이와같은 현상은 다윗이 본 시편을 저작함에 있어서 6편의 때와 그 저작 상황이 유사하므로 먼저 저작했었던 6편의 기억을 더듬되 심지어 그때 사용했던 용어까지 회상하면서 본 시편을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38:2
주의 살...주의 손 - 비록 화살을 맞는 듯한 아픔과 중한 짐에 눌리는 것과 같은 고통을 묘사하면서 계속 그 아픔의 고통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말없는 호소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Perowne).즉, 이 토로로 보아 본 시편 저자는 비록 고통을 당하고는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감당할 능력밖의 고통 을 주시지는 않는 분이라는 사실(저자는 이 사실을 그의 선조들의 경험을 통하여 알았으며,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아왔던 그 경험의 사실을 하나님의 백성이 받을 약속으로 믿고 있었다. 고전 10:13)을 의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언급 속에는 고통으로부터의 빠른 회복에 대한 기대가 더불어서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 고통의 토로는 불평이라기 보다는 화(禍)를 내리신 하나님의 자비에의 호소이다. 한편'주의 살'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마치 궁수(弓手)로 묘사하는 듯하다(7:12 ;욥 6:4). 허스트(Horst)에 의하면 고대 근동에 있어서 심한 피부병은 신적인 저주와 사단의 화살을 맞았기 때문으로 흔히 간주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절에서 하나님의 화살을 맞은 저자도 피부병의 일종인 문등병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주의 살이 찌른다고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당시 본 시편 기자가 어떤 구체적인 범죄로 인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그리고 그 고통은 실제적이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성경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어떤 성경 시대 당시의 근동의 역사 및 고증, 그리고 설화도 성경적 권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사실 하나님의 화살, 하나님의 손은 분명히 성경에서 신적 심판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고 있다(7:12 ; 삼상 63:5 ;욥 19:21). 따라서 우리는 본절을 보면서 그 죄악으로 인해 본 시편 기자에게 분명하고도 실제적인 심판이 임했으며 따라서 저자는 실제적으로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지나친 상상의 전개보다는 오히려 조용히 불식시켜야 한다고 본다.

=====38:3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 자신이 지금 엄청나게 아프다는 것(7절)을 나타낸 언급이다. 사 1:6에서 이 구절은 전 민족 실존의 위태한 상황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런데 '살'은 때때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즉, 히브리어로 '바사르' (* )인간과 동물의 신체를 이루는 물질을 의미한다(창 40:19). 그러므로 이 용어는 전체로서의 몸(79:2 ; 109:24)혹은 인간 및 인류를 가리키는 제유법적 용어(136 :25 ; 145:21 ; 창 6:12 ; 사 40:5, '모든육체')이다. 때때로 이 용어는 하나님과 대비되는 관점에서 연약한, 그리고 다양한 한계에 종속되는 인간을 기술하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한다(78:39 ; 사 31:3). 그리고 가끔 이 '바사르'는 인칭 대명사를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으로 쓰여 혈족을 암시하기도 한다(창 2:23 ; 사 58:7).

=====38:4
무거운 짐 같으니 - 죄 및 죄책에 대한 또 다른 적절한 묘사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의 가인도 이와 유사하게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창 4:13)라고 자신의 죄책을 언급한 바 있다.

=====38:5
나의 우매 - 이 용어는 잠언서에서 자주 언급된다(22번 정도). 본 문맥에서는 적어도 이'우매'가 어떤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라 '죄'와 동등한 그 무엇을 의미한다(3절 하반절 참조).이와 유사하게 잠언24:9은 미련한 자의 생각은'죄'라고 말함으로써 이 주장을 지지해 준다.

=====38:6
구부러졌으며...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 '슬픔 중에 다니다'를 문자적으로 해석하 '슬퍼하면서 가다'이다. 저자는 죄악의 고통으로 인한 아픔 때문에 길을 갈 때에 곧게 펴지 못하고 부정한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다. 마치 슬픔을 당한 자기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기 위하여 불결하고 천한 의복을 걸치고 다니듯 말이다(욥 1:20 ; 2:8). 이러한 표현은 전인적인 슬픔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38:7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 일반적으로 '허리'는 인간의 힘 그리고 자손을 낳는 능력의 근원으로 간주되었다(Johnson). 따라서 그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다는 것, 즉 그 허리가 상처를 입어 고장이 났다는 것은 재난의 심판으로 인하여 그의 모든 힘과 생명력이 박탈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열기(* , 칼라)는 '불타다'의 명사인데 흔히 '질병', '상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한편, 이 '카라'가 수동태로 사용되면 ...부터 멸시를 당하다'의 뜻이 기도 한다.

=====38:8
피곤하고 - 이에 대한 히브리어 원형은 '푸그'(* )로서 문자적인 뜻은 '힘이 없다','연약하다', '기진하다' 등이다. 좀더 구체적로 말하면 열기가 없어 싸늘해 졌다는 것인데 더 나아가 무감각 상태까지를 반영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용어는 야곱이 그 아들 요셉이 애굽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졸도할 뻔했을 때에도 사용되었다(창45:26). 그래서 어떤 학자는 본 용어를 '내가 신경이 마비된 사람과 같다'로 번역하기도 한다(Anderson).
심히 상하였으매 - 원래의 뜻은 '산산조각이 났다'이다.이것은 마음이 상한 상태이거나 고통과 슬픔으로 인하여 마음이 오그라 들었을 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51:8 사 19:10 ; 53 ; 57:15).
신음하나이다 - 이 구절을 '내가 사자처럼 포효하나이다'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는데, 이는 '신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아그'(* )가 흔히 사자들의 신음 소리를 가리킬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편, 은유적으로 이 단어는 지성소에서(74:4) 혹은 땅 위에서(렘 2:25) 소동하는 침략군을 묘사할 때, 욕심 많은 관원들(슥3 3) 그리고 포효하는 대적들(22:13)을 사자에 비유할 때에도 사용된다. 또한 심지어 여호와의 음성을 묘사할 때에(렘 25:30 ; 암 1:2),그리고 본절에서처럼 고통자의 고뇌에 찬신음소리를 묘사할 때에도 사용된다22:1 ; 욥 3:24).

=====38:9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 하나님만이 자신의 모든 필요와 요구하는 바를 아신다는 고백이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의 요구를 반복하지 않는데 이는 자신의 모든 경우를 기꺼이 하나님께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의 '소원'(* ,타아와)은 이와 동일한 단어가 10:17 ; 잠 11:23 ; 19:22 ; 사 26:8)등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용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흔히 '슬픔'으로 번역되기도 한다(G. R. Driver). 나의 탄식이...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 하나님께서 자신의 탄식을 확실히 듣고 자신의 모든 경우를 전체적으로 이해하셨으리라는 기대를 저자 편에서 강조하는 표현(Bar-nes)이다. 이처럼 본 시의 저자 다윗은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비로운 중재를 해주시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38:10
내 심장이 뛰고 - '뛰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사하르'(* )로서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다', '여기저기 여행하다', '물건을 팔기위해 여행하다', '헐떡거리다' 등의 뜻이 있다(창 23:16 ; 37:28 ; 42:34). 그런데 여기서와 같이 심장, 즉 마음이 적용될 때에 이 용어는'심장이 두근거리다', '뛰다', '맥박이 빨라지다' 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심장의 고동을 의미하는데 이 점에 치중하여 혹자는 본 구절을 '나의 가슴이 맹렬히 뛰다'(Boylan) 혹은 조금은 지나치게 '마음이...에게 흘리다'로 번역하기도 한다(Thomas).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 이 구절은 '하팍스 레고메논'(ahpax iegomenon),즉 구약에서 한번밖에 나오지 않는 부분으로서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다(Anderson). 보통 성경에서 '...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그 사람의 힘이 생되었다'는 것을 뜻함을 고려할 때(13:3 ; 삼상 14:29), 본절은 저자의 활력과 힘이 사라져 버린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앞 부분의 증상들로 인하여 본 시편 저자의 생명이 거의 꺼져가고 있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분명하다(Barnes).

=====38:11
상처 - 원어는 '네가'(* )로서 문자적인 뜻은 '한번 내려치기', '한번 바람이 불기'이다. 여기의 '한번 내려치기'란 하나님이 인간 위에 내리신 재앙이나 심판이란 의미이다(창 12:17 ; 출 11:1). 그래서 여기 일반적인 의미의 재앙이나 심판을 구체화시켜서 '문등병'(레 13:2 ; 신 24:8)혹은 그와 유사한 '피부병' 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Jerome, Anderson). 이에 대한 근거로는 그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까지도 그를 멀리했다는 문맥에 의거한다. 그런데 이 주장이 참고는 될 수 있으나 정당한 주장으로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이에 대한 명백한 성경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38:12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 이것은 본 시편 기자가 약해지고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에 의하여 버림을 받아, 도움 받을 사람이 없는 자가 되어 버린 사실을 이용하여 대적들이 자신을 해(害)하려고 했던 것을 가리킨다. 여기의 대적들을 기자의 친구 및 친척들로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Kraus, Anderson), 이는 문맥상 맞지 않는다.

괴악한일을 말하여 - 문자적인 뜻은'불행스러운 것들을 말하여'이다. 이것은 기자의대적들이 그에 대한 증상 모략의 말을 했던 것을 가리킨다. 욥의 세 친구가 그랬듯이 그의 대적들은 기자가 아픈 것은 죄로 인한 징벌이라고 다그쳤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가 만날수 없는 자들에게까지 그에 대한 헛된 소문을 퍼뜨렸을 것이다(Anderson).

=====38:13
듣지 아니하고 - 대적들의 헛된 자극에 반응을 보이거나 분노하지도 않고 그들이 아무 말도 안한 것처럼 조용히 인내했다는 말이다. 이를 좀더 영적으로 말하면 죄를 인식함으로써 변명도, 논쟁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그 처분을 맡겼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서는 그의 무죄성을 주장하였던 욥과 다르다. 즉, 본 시편 기자는 자신의 고난 속에서도 계속 침묵을 유지했는데 그 까닭은 자신이 범한 죄가 무엇인지 확실히는 모르는 상태지만 죄가 있다면 그것을 징벌하실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Anderson).

=====38:14
변박(辨駁)이 없나이다 - 문자적인 뜻은 '반응이 없다'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변호를 위한 변론이 없었다는 것이다(욥 23:4 참조,Perowne). 칼빈(Calvin) 은 본 시편 저자가 자신을 반응이 없는 자에 비유한 이유를 두 가지 드는데. 그 하나는 그의 대적들의 불공정성에 강압을 당하여 말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자발적 굴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후자의 경우만을 옳다고 본다(Perowne). 왜냐하면 그가 응답하지 않은 것은 할 수 없었기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롬 12:19 참조). 한편, 여기서 다윗은 고뇌하며 고통당하는 자의 모형으로 나타나 있다(사 53:7 ; 벧전 2:23). 그러나 이 모형론적인 해석은 1-4절의 문맥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죄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위대한 고통 당하는 자이신 그리스도 역시 고통 중에서 침묵하신 것은 사실이나 그분은 죄가 있어서 그 고통을 당하신 것은 아니므로 죄를 언급하고 있는 1-4절은 메시야적 해석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38: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 당신에게 내가 소망을 두어왔기 때문입니다'이다. 문장 맨 앞에 놓인 '키'(* ,왜냐하면)는 12-14절에 언급된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저자가 인내하였던 이유를 밝히는 원인 접속사이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부당하게 모략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실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저자는 그의 대적들로 인한 수모와 억울함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 같은 아름답고도 완전한 모범을 벧전 2:23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38:16
내가 말하기를 - 개역 성경의 번역은 원문 '키 아마르티'(* )를 그대로 직역한 것이다. AV는 이 구절을 쉽게 풀이해 놓았다. '(저희가 네게 대하여 즐거워하지 못하도록) 제가 기도하였나이다' 흑은 '(저희가 나로인하여 계속해서 즐거워하지 못하도록) 나의 탄원을 아뢰었나이다.
' 망자 존대(妄自尊大) - '저자에 대항하여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자'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저자의 과거 및 현재의 경험을 언급하는 말이다. 이것은 욥 19:5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말로 패역 무도한 자가 스스로 존귀하고 큰 자로 착각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38:17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 (* , 키 아니 레첼라 나콘). 문자적인 뜻은 '내가 이제 막 중단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무엇을 의지하려고 하면서 (예를 들면 담벽 같은 것) 한편 으로는 자꾸 넘어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가면서 자꾸 넘어지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할수 있다. 본절에서 저자는 자신의 힘이 거의 고갈되어서 계속되는 죄악 속으로 넘어질 위험에 처했든지 아니면 가중되는 짐 때문에 자꾸 가라앉고 있는, 그래서 그의 대적들로 하여금 승리의 쾌재를 부를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Barnes). 그로 인한 고통은 거의 죽음으로 인도하는 고통이기도 하다(Anderson).

=====38:18
내 죄막을 고하고 - 본절에서도 역시'키'(* , 왜냐하면)가 나오므로 15절에서부터 본절 서두까지 계속해서 이 접속사가 나온 셈이된다. 이것은 15-18절의 내용들이 일련의 사상의 흐름을 공유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들 절들은 11-14절에서 계속된 대적들의 음모와 그로 인한 수모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묵묵 부답이었던 이유를 밝힌다(Perowne). 먼저 15절은 하나님께서 저자 자신에게 응답하시리라는 기대를, 16절은 문제를 저자 자신의 수중으로 돌려 해결하려 할때는 대적들이 쾌재를 부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17절은 자신의 연약함을 그리고 본절은 자기 속에 고백해야만 하는 죄가 있음을, 그 각각의 이유로 들고 있다. 한편, 여기의 '키'는'참으로', '진실로' 등을 뜻하는 강조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본 시편 저자는 그의 심각한 상황속에서 그 상황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불행의 원인이기도 했던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선포하는 일임을 강조해서 밝힌다(32:1). 하나님의 자녀들도 땅 위에 살면서 갖가지 역경에 처하게 되는데 그 이유 중의 중요한 한가지는 죄가 그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 막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8:19
내 원수가 활발하며 - '활발하며'(* , 하이임)는 '생기있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문자적인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혹자는 본절을 '나의 대적들은 활기차고 강하며'로 잘 번역하고 있다(De Wett). 본절이 의미하는 바는 저자 자신이 연약하고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때 그의 대적들은 생기가 왕성하고 육체적으로도 아주 건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적들은 그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추진력 있게 달성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저자의 연약함을 그들의 유일한 점으로 삼았으며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저자는 그들과 겨를 수도 없었다. 어떤 면으로 봐도 불리한 그는 이제 하나님의 중재 만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Barnes).

=====38:20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 본 구절이 묘사하는 상황의 역설은, 그의 대적은 이방인이 아니라 그가 아주 공평하게 대해 주었던 자들이 라는 것이다. 유사한 상황이 35:12 ; 109:3 등에 묘사에 묘사되어 있다.
내 가 선을 좇는 연고로 - '연고'(* , 타하트)의 본래의 뜻은 '아래 부분, 아래, 그리고 기초가 되는 부분' 등이다. 본 구절의 의미는 본 시편 기자의 대적들이 그에게 악행했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의로운 자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대적을 당하거나 고난을 받는 출발이었다. 진정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를의 죄를 고백하고 언행심사에 있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의로운자가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렇지만 바로 이것이 악인들이 그들을 미워하고 넘어뜨리게 하는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38:21
나를 버려지 마소서 - 11-14절의 상황을 고려할 때 본 구절은 다음과 같은 말로 풀어볼 수 있겠다. '나를 나의 고통, 아픔, 고뇌 속에 버려 두지 마소서. 죽도록 내버려 두지 마소서. 중얼중얼하고 멸시하는 자들에게 맡겨 두지 마소서. 나의 대적의 비난에 나를 남겨 두지 마소서'(Barnes). 그런데 저자가 이같이 절규하는 이유는 하나님 고통하는 자에 대해 잠정적로 '외면하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22:1 ; 27:9 ; 71:9, 18, Anderson ).

=====38: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 즉각 하나님이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기도로서 저자가 처한 상황의 절박성을 엿볼 수 있다(22:20 ; 40:14 ; 71:12 ; 141:1).
주 나의 구원이시여 - 그의 시련은 하나님 앞으로 그를 인도하였는데 바로 이것이고통과 시련이 의도하는 목적이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시련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그에게 있어서 시련은 괴로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시련의 종국적인 목적도 달성치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련과 고통의 본 목적을 상기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여러 종류의 역경들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역경들로 인해서 죄를 멀리할수 있고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고 하늘에 준비된 것들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시편은 회개시(6, 32, 38, 51, 102, 130, 143) 중 하나로, 다윗이  극심한  고통
중에 지은 개인적 애가(哀歌)의 성격을 띤다. 이 시의 작시 배경에 대해서 확실히  알
려진 바는 없지만 다윗이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질병으
로 오랫동자나 고생할 때 참회하면서 지은 시로 짐작된다. 또한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
계획과 친구들의 배신 등으로 심적으로도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다. 표제
에 ' 다윗의 기념케 하는 시'라고 되어 있는데, 이 표제는 여기와 70편 두 곳에만  나
타난다. 이런 표제가 붙게 된 것은 다윗 시대 이후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화제(火祭)를
드리면서 이 시편을 부른데서 붙여진 것이다. '기념케 하는' 대상이 하나님이라고  볼
때, 이 표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
억한다는 것, 혹은 기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개입을 바라는 뜻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한편 칠십인역(LXX)에는 '안식일을 기념하는 시'로 번역되었는데, 안식일에 본 시편은
내용에 따라 세 부분으로 구분하는데, (1) 1-8절은 징계에 의해 질병으로 고통하는 중
하나님께 애원하는 내용으로 되어있고 (2)9-20절에서 시인은 친구와 친척의 배반을 탄
식하며 하나님께 애원하고 있고, 계속해서 원수의 위협을 호소하고 있다. (3)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기도문이다(21, 22절).
  본시의 고통을 호소하는 몇개의 구절들은 욥기에 나타난 욥의 애원과  매우  흡사하
다. 2절의 '살(화살)' 이라는 말은 욥 6:4과, '삐'(3절)는 욥 33:19과 비슷하다. 또한
욥이 그의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멀리함을 당한 것처럼 본시에 나타나는 다윗의 형편도
그와 흡사하다(욥 19:13-19). 또한 시인이 당한 고난은 복합적인 성격을 띠었다. 범죄
의 중압감은 지독한 질병으로 인해 더 심화되었고 이러한 재난은  친한  친구들로부터
소외를 당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대적들은 이 기회를 노려 시인을 제거하
려는 음모에 몰두했다. 따라서 본문에서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간구와 고백은  인간의
간사함과 사악함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을 갈망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한다.

  1. 질병 중의 부르짖음(38:1-8)
  밧세바와의 불륜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다윗은 그 징계의 아픔이  얼
마나 큰지를 밝히고 있다. 특히 그는 고통받고 있는 신체 부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함으
로써 괴로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육체적  질병의
원인이 자신의 죄악 때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힘쓴다. 시인은 1절에서 자신의 처
지를 돌아봐 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하며 곧 이어 그 간구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1절의
간구는 6:1의 간구와 흡사하다. 이 점으로 미루어 두 시가 같은 시기의 저작물인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 간구는 징계 자체를 물러가게 해달라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받
고 있는 고통을 감해달라는 내용으로 시인의 바람직한 회개의 자세를 엿보게 하는  대
목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에 대하여 노를 그대로 베푸신다면 아무도 그분 앞에 설 자가
없으므로(76:7;103:3), 하나님의 징계의 노가 덜해지도록 간구하는 것은 성도의  옳은
태도이다. 다윗은 이처럼 애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기 때문이다(2절). 그
는 자기의 질병이 하나님께서 징계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주의  살이
자신을 찔렀다' 는 것은 육체적 고통이 심했을 뿐 아니라 죄로 인한 마음의 고통이 심
했다는 것을 아울러 나타내는 말이다. 그리고 '주의 손이 자신을 눌렀다'는 표현도 죄
책에 대한 마음의 압박감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다윗은 징계로 말미암은 질병의 정도가 어떠했는지 말하려 한다. 하나님은  죄
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범죄한 자에게 진노하신다. 다윗은 자신의 질병의 정도가  얼마
나 심각한 것이었는지 기술하고 있다(5-8절). 상처는 곪아 썩을 정도였고 그러므로 그
가 아픈 나머지 종일토록 누워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온 몸을 지탱하는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며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그리고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마
음의 고통은 더욱 깊어갔고 마음이 불안하여 안정치 못하며 심히 지쳐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다윗의 진술은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일
깨워주고 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징계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사랑
하시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징계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
들을 사랑하시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하나님의 징계는 파멸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동일한 범죄를 다시 행치 않도록 하시는 사랑의 채찍이다(욥 5:17; 잠  23:13;
히 12:6).
  또 시인은 자신의 죄로 인해 '내 뼈에 평안함이 없다'(3절)고 한다. 이것 역시 육신
의 고통보다는 마음의 고통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자기가 이러한 고통을 당
하는 이유를 '죄악이 머리에 넘쳤기 때문'(4절)이라며 다시 질병의 원인이 죄  때문이
라고 밝힌다. 시편 기자는 그 죄악을, 머리 위로 넘치는 홍수 같고 무거운 짐  같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이 큰 죄악의 짐은 오직 하나님게 나와야만 해결될 수 있다. 곧  예
수 그리스도께 나오기만 하면 그 모든 짐을 그분께 맡아 주시므로 온전히 해결된다(사
53:11;마 11:28; 행 13:39; 롬 5:18, 19). 시인은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난다'(5절)고
고통을 표현했는데, 아픈 부위가 진물러 곪을 정도로 질병의 기간이 길었음을  나타내
는 것이다. 여기서도 다윗은 이 질병의 원인이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비롯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잠 24:0; 사 35:8). 시편 기자는 계속해서 자기가 겪는  질병의
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6, 7절). 다윗은 쇠약해져 시체와 같이 몸이 오그라들었고
따라서 슬픈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아가서 시인은 이러한 육체적 고통이 마음의 고
통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밝힌다(8절). 그의 마음은 몹시도 불안하여 그 마음이 조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의 마음속에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결국 그로 하여금    부르짖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성령을 모시고 사는 성도가 죄에 빠지게 되었을 때  성령께
서 탄식하시며 근심하므로 결국 죄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요 14:16; 롬 8:26;고전 3:16, 17).

  2. 배반과 위협 속에서의 간구(38:9-20)
  다윗이 겪는 고통의 새로운 국면이다. 여기서 시인은 자기의 고통이 질병의  차원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소외와 원수들의 위협에 기인하고 있음을 말한다. 주위
의 친구와 친척들이 쇠약해져가는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또한 그 틈을 이용해 원수들
은 핍박을 가해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꿰뚫고 하나님의 선처를 바라고 있다.
  9절에서 시인은 육체적, 심적 고통을 토로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 대한  자
기의 확신을 새롭게 언급한다. 이는 모든 고통들 가운데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는  활
력소이며 자기의 처지를 하나님게서 모두 알고 계신다는 확신에 찬 간구인 것이다. 그
렇다고 해서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윗은 이런 확신에 차 있음에도  여
전히 그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힘이 쇠진하여 마치 송장과 같이 눈의 빛도 희미해져
간다(10절).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서 시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88:9;욥  17:7
참조). 친구와 친척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반은 더욱 시인의 마음을 고통스럽
게 만든다. 더구나 주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병상에 있을 때의 배신이란 더욱
그를 비참하게 한다. '사랑하는 자'란 압살롬을 연상케 하며, '친구들'은  아히도벧과
같이 일평생 다윗과 의노하던 자들이며(삼하15:12; 대상 27:33  참조).  '친적들'이란
평소 긴밀한 우호 관계를 유지했던 이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의 질병을  마치
문둥병처럼 싫어하여 그 옆에 접근하지도 아니했고 멀찍이 서서 관망하고만 있다.  심
지어는 그 틈을 타 반란을 모색하기도 한다(삼하 16:7, 8).
  혹독한 육체의 질병과 주위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절망 상태에 처해  있는    다윗에게
설상가상으로 견딜 수 없는 핍박이 몰려 오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원수들의 움직임이
었다. 그들은 다윗의 생명을 노리며 올무를 놓고, 괴악한 일을 말하며,  또한  온종일
궤계를 도모하는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다윗을 해치려고 한다(12절). 다윗  왕이
오랜 투병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못하는 사이에 반역자의 악행은 더욱 무르익어  가기
만 한다(삼하 15:1-6;16:7, 8). 그러나 시인은 침묵하고만 잇다(13, 14절). 이는 시인
이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악행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신다고    확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다윗이 마하나임으로 압살롬을 피해 피난 길을 떠날 때에 바후림에서  시므
이가 저주하는 말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로 알고 침묵하였다(삼하16:10). 이 침
묵은 다윗이 하나님만 바라며 주님께서 응답하여 주실 것을 확신함에서 기인한 신앙적
침묵이었다(15절). 다윗은 장차 오실 메시야의 예표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사야
의 예언대로(사 53:7) 대제사장과 빌라도 앞에서 변론하시거나 변명치 않으시고  침묵
하셨다( 마 26:62, 63; 요 19:9). 또 한편으로 다윗은 만일 자신의 간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실패하였을 때 원수들이 소리지르며 교만하여 하나님을 무시할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더욱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며 바라고 있다(16절).
  아울러 그는 다시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어야 할 몇 가지 이유를  첨가한다.  첫째는
오랜 병상의 고통으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우므로 이제 구원해 주셔야 한다고  간구한
다(17절). 둘째는 이 무서운 고통이 자신의 죄악 때문이었음을 깨달아 자복했다는  것
이며(18절), 셋째는 원수들의 힘이 강하고 그 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19절). 마지
막 이유로 선을 행하는 자신의 악인들, 즉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20절) 자신의 간구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윗이 이
러한 이유를 내세워 하나님의 응답을 촉구하는 것은 그만큼 그가 처해있는 상황이  몹
시도 절박하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만이  자신
의 유일한 소망임을 인식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처지를 다 아고 계시기에  그
의 소원을 주 앞에 내려 놓는다(147:5;삼상 2:3; 사 40:28). 그러므로 성도는  인간의
연약함을 하나님께서 아실 뿐 아니라 성실한 구원자임을 인식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쉬
지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살전 5:17). 또한 시인은 그 극렬한 고통  중에서
도 선을 악으로 대하는 원수들을 대항하여 맞서지 아니하고 오히려 선으로 악을  이기
는 성도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같이 성도는 어떠한 경우라도 화평을 힘
써야 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써 악을 이겨야 한다(마 10:13; 눅 10:6; 롬 12:18;
히 12:14).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고, 성도가 할 수 있는 것은 인내하면서  선으
로 악을 이기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잠 20:22;25:21, 22;마 5:43, 44; 살전 5:15).

  3. 구원을 바라는 기도(38:21-22)
  결론적 기도문으로 다윗이 바라는 모든 기도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그는 오랜 기
간 동안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듯한 극심한 고통 중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시인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더욱 하나님게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인내로 기다리고 있다. 기자는 하나님게 세 가지로 호소하였는데, '나를 버리지  마소
서',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구하소서'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이  자신
을 너무 장기간 버려두시는 듯하므로 속히 구원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끔 자신의 영광스러운 뜻에 따라 당신의 존재를 성도들에게    감추시는  경우도 있으나, 영영 자기의 백성들을 잊어버리시지는 않으신다(사 49:14, 15). 성도는  이러한 때 기도할지언정 낙심하며 좌절해서는 안된다. 시인은 '주  나의  구원이시여'라며 시를 끝맺고 있는데,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심을 나타내고 구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담고 있다 하겠다.
  우리는 이 시편을 통해 (1) 반드시 실현되고야 마는 하나님의 공의를  배우게  되며 (2)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하나님께로 더욱 나아가는 성도의 진실된  모습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므로 누구를 막론하고 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루게 하신다. 그 징계는 성도로 하여금 다시 동일한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방도이다(욥 5:17; 고전 11:32; 딤후 2:25). 죄악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성도는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근신하여 더욱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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