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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
이 시편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시로서 그 저작자는 다윗, 여호사밧, 히스기야 등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저작자가 정확히 누구인지를 판명할 증거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 시편의 기자를 유다의 한 왕 정도로 추측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할 것이다. 한편, 본 시편은 '나'가 주어인 개인적인 찬양시가 '우리'가 주어인 집단의 찬양시와 조화되어 예배용으로 적합하며, 이에 따라 이 시편은 실제로 예배 때에 사용되어 찬양대와 예배자들에 의해서 공히 룰려졌었다고 한다.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지어다 - '온 땅' 곧 '온 세계'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축복에로 초대하는 구절로서(Rawlinson) 하나님께 대한 호칭 외에는 100편 첫 구절과 동일하다. 이같이 함으로써 시인은 하나님께서 만 백성으로부터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나타냄과 아울러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속에 포함될 것을암시적으로 예고하는 듯하다(Calvin). 한편, '즐거운 소리를 발할지어다'는 하나님께 대한 찬송은 억지로 혹은 형식적으로 해서는 안 됨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온전히 마음을 바치는 자발적이고도 정성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66:2
본절은 예배시 찬양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보여준다. 그중 하반절이 찬양의 자세 혹은 방법에 관한 원칙이라면 본 문구는 찬양의 주된 관심사 혹은 내용에 관한 원칙을 보여준다(Kidner).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 '이름'은 그분의 '인격'이나 '사역' 등을 뜻한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25:19-26 주제 강해, '이름 짓기'를 참조하라. 한편, '영광'(* , 케보드)은 '무겁다'를 뜻하는 상태동사 '카쎄드'(* )에서 온 단어로서, 존엄성 혹은 위대성을 나타낸다(rawlinson). 그리고 '찬양하고'(* , 자마르)라는 동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베푸신 위대한 일을 기념하기 위한 찬양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었다(삿5:3). 그런 점에서 본 동사에는 하나님께 대한 찬앙 행위에 앞서 그분께 대한 분명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칼빈(Calvin)은 본 문구가 '하나님께 그분의 영광과 존귀에 합당하게 찬송하라'는 뜻을 갖는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 이 문구(* , 시무 카보드 테힐라토)에 대해서는 (1) '테힐라토'를 목적을 나타내는 대격으로 보고 '그분께 찬송을 영화롭게 드리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해석(Calvin, Aben Ezra, Weiser, 개역 성경) (2) '카보드'를 목적을 나타내는 대격으로 보고 '찬송하여 영광을 돌리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해석(Hengstenberg, Keil) (3) '카보드'와 '테힐라토'를 동격으로 보고 '그분께 영광과 찬송을 높이다' 번역해야 한다는 해석(Hupfeld, NIV) 등이 있다. 그러나 문맥상 찬송의 방법을 잘 보여주는 (1)의 견해가 가장 적절한 듯하다(Kidner). 그렇다고 한다면 본문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 절대적인 존귀성에 합당한 방식으로 찬양하라는 뜻이 된다(CAlvin).


=====66:3
하나님께 고하기를 - '고하기를'(* , 아바르)은 이 문맥에서는 '고백하다', '시인하다' 혹은 '인정하다'의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신 26:17,18).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 '주의 일'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기적적인 역사(役事)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엄위하신지요'(* , 노라)는 '두려운지요'의 뜻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벡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푸신 기적적인 역사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음은 말할 나위도 없고 심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 백성들에게 까지 크나큰 두려움을 안겨주었었다(출 15:14-16; 수 2:9).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 '주의 원수'는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려고 하는개인, 혹은 일단의 세력들을 총칭한다. 사실상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경배하지도 않는 이방인들은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주의 원수'임이 분명하다. 한편, '복종할 것이며'(* , 카하쉬)는 '실패하다' 혹은 '거짓말하다' 등의 뜻을 갖는 단어로서, 여기서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피할 목적으로 자신의 본심과는 다르게 일시 굴복하는 것을 뜻한다(18:44; 76:12). 예컨대 애굽의 바로 왕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두려운 재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잠정적으로 굴복했었다(출 12:29-33). 그러나 바로 왕은 곧 마음이 변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고 병거를 동원하여 추격했었다(출 14:5-9).

=====66:4
여기서도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강조되고 있다. 이처럼 본 시편의 저자가 한 가지의 일을 거듭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즉, 저자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합당하게 찬양할 능력조차 제대로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녀무나도 연약한 인간이지만 그들의 주의를 계속 환기(換起)시킴으로써 더 나은 찬양에로 인도하고자 한다(Calvin). 아무튼 본절도 1절처럼 장차 온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고전 15:24,25).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 본절은 앞의 '주를 찬양하며'를 반복 강조한 표현이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앞에서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언급한 것이라면 여기서는 그분의 성품 혹은 사역에 주안점을 둔 표현이라는 점이다.


=====66:5
와서 하나님의 행하신 것을 보라 - '와서'(* , 레쿠)는 초청이나 도전을 제시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종종 사용되는 단어이다(16절; 사 2:3,5 참조). 그런데 여기서는 이러한 뜻 이상을 내포하는 말로 쓰였다. 즉, 본문에서의 의미는,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권능과 통치를 믿지 못하겠거든 인류 역사, 그중에서도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이미 밝히 드러난 증거들을 가서 보라'로 이해된다(Alexander). 아울러 본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권능이 크신 손을 간과하고 헛된 것으로 향하려는 우리 인생들을 간접적으로 책망한다(Calvin). 그러면서 우리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66:6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 되게 하셨으므로 - 이는 바로 왕의 추격으로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한 초자연적 역사(役事)였다(출 14:21-25). 하나님께서 이같이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갈라진 홍해를 건너 바로의 마수를 피할 수 있었다.
무리가 도보(徒步)로 강을 틔과하고 - 앞 문구의 마지막 부분인 '하셨으므로'라는 표현은, 본 문구가 앞의 문구에 종속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본 문구는 앞 문구에서 말하는 바, 곧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신 사건과는 다른 사건을 말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즉, 본 문구는 이스라엘 벡성들이 홍해를 건넌 때로부터 40년 후 여호수와의 인도 아래 요단 강을 건넌 사건을 말하고 있다(수 3:15-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이 홍해를 가르신 사건과 요단 강을 마르게 하신 사건을 하나로 말하고 있는 것은, 두 사건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푸신 일련의 불가분리적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기서 주로 인하여 기뻐하였도다 - '거기서'(* , 쇰)는 저자 자신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입장에서 문장을 기록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Keil). 다시 말해서 다윗은 그 조상들이 홍해를 건넌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의 사람이지만 자신을 홍해를 건넌 조상들과 함께 있었던 것처럼 표현한다(출 14:21-25; 수 5:1). 사실 이 같은 표현은, 이스라엘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스 9:6,7: 느 9:32; 히 7:10)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1) NIV는 본 문구를 '그 분 안에서 기뻐하자'로, (2) 바이저(Weiser)는 '거기서 우리는 그분 안에서 기뻐할 것이다'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번역은 '우리'라는 말과, '기뻐하였도다'(* , 니스메하)가 미완료시제라는 점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미완료시제라도 '솽'(* )이나 '아즈'(* ) 다음에 나올 때는 부정 과거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Keil).


=====66:7
저가 그 능으로 영원히 치리하시며 - '능'(* , 기보라)은 '전쟁에서 이기다' 혹은 '능가하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가바르'(*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전쟁에서 이길만한 막강한 능력이란 뜻이다(삿 8:21; 왕하 18:20). 그리고 '치리하시며'(* , 마솰)는 어떤 물리적 힘의 행사를 통한 통치 혹은 주관(主管) 행위를 뜻한다(창 3:16; 37:8).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이 당신의 기적적 능력을 동원하사당신께 반역하는 자들에게 필요 적절한 징벌을 내리심으로써 이 세상을 마지막 날까지 통치하시는 것을 뜻한다(단 4:25). 사실 하나님의 이같은 통치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역사적 실례들은 너무나도 많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학대하였던 이교적(異敎的)인 국가들을 차례로 멸망시키셔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끔 하셨다.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적그리스도 국가에 대해서도 그같이 하시겠다는 분명한 예언도 있다(단 2:43-45). 그런데 칼빈(Calvin)은 '영원히'(* , 올람)를 '세상'으로 보고, 본 문구가 하나님의 세상 국가에 대한 통치를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도 다스리고 계심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올람'이라는 단어가 '세상'의 뜻으로 쓰인 경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개역성경처럼 ''영원히'로 번역함이 타당하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까닭에, 당신의 백성들을 세상의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심과 아울러 이 모든 역사의 흐름을 궁극적으로 당신의 뜻 가운데로 이끄시기 위함(Rawlinson)일 것이다.
눈으로 열방을 감찰하시나니 -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돌보시는 역사 중의 하나를 나타낸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들이 당신의 백성들을 해하려고 하는지를 살피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주님의 통치를 거역하는 일, 곧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일은 그러한 일을 하는 자들에게 백해 무익(百害無益)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권능에 의해서 도리어 멸절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거역혀는 자는 자고(自高)하지 말지어다 - '거역하는 자'(* , 하소르림)는 '완고하다' 혹은 '반항적이다'를 뜻하는 동사 '사라르'(* )의 분사로서, 송아지가 제 고집대로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완강하게 버티거나 저돌적인 몸짓을하듯(사 65:2; 호 4:16), 무분별하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을 뜻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는 일에 일단 성공함으로써 '자고하게' 될 것이다(사 10:5-9). 그러나 그러한 거만함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세상을 엄중히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을 철저히 멸망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사 10:12; 말 4:1; 눅 1:52).
송축하며(* , 바라크) - '복을 빌다', '찬양하다' 혹은 '무릎을 꿇다'의 뜻까지 내포하는 말이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의 동사가 '가볍게 생각하다'는 의미인 '칼랄'(* )이다. 한편, 본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이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만방의 모든 이들로부터 찬양받기에 합당하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킴으로써 우주적 찬양에로 초대하고 있다(1,4절 참조).

=====66: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두시고 - '영혼'(* , 네페쉬)은 차라리 '생명'으로 번역함이 더 낫다. 한편 '살려 두시고'(* ... , 하삼...바하임)는 '살려'와 '시고' 등 두 개의 분사로 이루어진 문구로서 '살아있는 자 가운데두고'의 뜻이다(has kept us among the living, RSV). 이는 하나님께서 과거의 조상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차후에도 당신의 백성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출하실 것을 가리킨다.

=====66:10
여기서부터 12절까지는 9까지의 언급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일말의 의문을 풀어주기위한 부분이다. 즉, 만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벡성을 항상 지켜주신다면, 왜 그들이 때때로 이방인들에 의한 고통을 당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으로부터 일시 고난당했던 일들이 영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말해준다. 여기서 '시험하시되'(* , 바한)는 원래 금속의 속성 및 순도를 측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 '단련하시기를'(* , 차라프)은 금속의 순도 측정을도가니에 집어 넣어 그 금속에 섞여 있는 잡성분을 제거하는 일을 가리킨다. 결국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에 의해 잠시 고통을 당한 것은, 그듸을 보다 순수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뜻에 따른 것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그 같은 일시적 고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히려 커다란 유익이었음이 분명하다(욥23:10; 슥 13:9; 히 12:10).
은 - 특히 이 금속은 순수하다고 인정을 받기까지 계속적으로 거듭거듭 연단을 필요로 한다.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한 연단의 과정이 요구되는 '은'으로 비유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연단이 지극히 필요했음을 암시한다(Rawlinson).

=====66: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 본서 기자는 이스라엘이 당한 환난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이러한 시험의 목적이 백성들 가운데서 블경건한 악습을 제하고자 하는데 있었음을 말하려고 함은 분명하다(렘 6:29 참조). 한편, 본절의 '그물'(* , 메추다)을 '요새'(Cohen, Delitzsch) 혹은 '광야'(Dahood) 등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본절과 다음절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비참상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는 '그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다(KJV, RSV, Anderson). 한편, 겔 12:13; 17:20 등에서는 하나님이 악행자들을 그의 그물에 포획하는 사냥꾼처럼 묘사되고 있다.


=====66:12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 '사람'(* , 에노쉬)은 반항적이고 오만하여 자신을 높이려 애쓰지만 결국 소멸되버리는 피조물로서의 유한하고 연약한 인간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69:3; 사 29:3 참조, Keil). 따라서 이 말은 여기서 이스라엘의 압제자들 또한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필경 파멸케 되고 만다는 암시를 준다. 한편, '타고'(* , 라카브)는 원래 '말을 타다'의 뜻이다. 결국 본문은, 이스라엘 벡성들이 자신들의 머리 위로 말이나 병거를 탄 사람들을 지나가게 한 것과 같은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시련을 겪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틔행하였더니 - '불과 물'은 고통스럽고 위험한 장난을 상징한다(사 43:2).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련은 그들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 심각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주께서...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 '풍부한 곳'( , 르와야)은 '물릴 정도로 실컷 먹다'는 뜻의 동사 '라와'(*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먹을 것이 많은 곳, 혹은 마음대로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뜻한다. 시련을 당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를 속박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한 굼주림의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한편, '끌어내사..들이셨나이다'(* , 토치에누)는 '나가다'를 뜻하는 동사 '야차'(* )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본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에 의한 치욕마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의 결과엿음을 보여준다.

=====66:13
레 1:3-9 주제 강해, '번제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주의 집 - 본 시편의 저자 유다의 한 왕으로 본다면(1절), 여기의 '주의 집'은 말할 나위도 없이 솔로몬에 의해 건축된 '성전'임이 분명하다.
서원을 갚으리니 - 여기서 '서원' (* , 네데르)은 본 시편의 저자가 지난 날에 만났던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했던 서원일 것이다. 그는 그때,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면서 그렇게 해주실 경우 감사의 제사를 드릴 것을 약속햇음직하다(61:8).

=====66:14
이는(* , 아쉐르) - 앞절의 '서원'을 선행사로 삼는 관계 대명사이다. 즉,이 관계 대명사 이하(以下)는 앞절의 서원이 언제 행해졌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내 입술이 발한 것이요 - '발한 것이요'( , 파차)는 '하품하다', '찢다', '입을 열다'의 뜻으로서 크나큰 시련을 당하여 어쩔 수 없이 특별한 무엇을 약속할 때 사용된 동사이다(삿 11:35, Keil). 그렇지만 이맹세는 하나님을 일시 기만하여위기를 모면하려는 얄팍한 목적을 갖지는 않는다. 도리어 자신을 구원할 자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자신의 마음을 확증키 위한 수단이다(Calvin).

=====66:15
서원(13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행될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특히 본절은, 본 시편의 기자가 상당히 높은 신분임을 확증해 준다. 즉, 본절에 등장하는 상당한 수량의 제물들은 비천한 사람들에 의해서 결코 드려질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예컨대 '수양'은 주로 대제사장, 종족의 두령 등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서 드려진 제물이다. 한편, '향기'(* , 케토레트)는 제물을 제단 위에서 태움으로서 발생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를 뜻한다.


=====66: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 이는 신자들, 혹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지칭하는 일반적 표현이며 시편의 다른 곳에서 '의인'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에 해당한다(1:1). 여기서 본서 기자가 자신의 '선포'를 들은 자를 제한한데는 분명한 이유가 잇다. 즉,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 만이 기자가 말하지 않고는 배길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잇으며, 위선으로 가득 찬 사람이나 불경건한 자들에게는 그러한 '선포'가 전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Calvin). 아울러 본문은 여호와의 구원의 은총을 다른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 자세를 엿보게 하기도 한다(22:22, Anderson).
내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 - 하나님께서 시인을 환난(14절)에서 구출해 주신 것을 뜻한다. 또한 본절 하반절은, 구원을 얻고 또 계속 평안한 가운데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 복종하고 헌신하는 것임을 역으로 강조하는 맡이기도 하다.


=====66:17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 '부르짖으며'(* , 카라)는 주로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기도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34:6; 81:7). 그리고 '입으로'는 하나님께 열정적인 기도를 했었음을 보여준다.
내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 문자적으로는 '찬송이 나의 혀 아래 있도다'의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그에 대한 찬송의 준비를 갖춘 것을 가리킨다(Keil, C.B.Moll, Rawlinson).

=====66:18
내가...죄악을 품으면 - 이 같은 가정(假定)은 자신의 결백함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품으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 )는 혹은 '눈 앞에 무엇을 그리다'(창 20:10)의 뜻이다. 따라서 본문은 기자가 특별한 악행을 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마음속에서 구체화시키지도 않았음을 보여준다.


=====66:19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 저자가 혹 자신에게 은밀하게 행한 죄가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될까 염려했었음을 보여준다. 사실 완전히 죄와 상관이 없는 자는 결코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어또게 해서든지 죄를 멀리하려고 힘쓰며 애쓰는 사람을 찾으실 뿐이다. 주의하셨도다(* , 카솨브)는 '자세히 귀담아 듣다'의 뜻이다(10:17; 사 10:30; 28:23).

=====66:20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허락하신 데 대한 결론적 다짐이다. 인자하심(* , 헤세드)은 결코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뜻한다. 특히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환난 중에서 구출해 주시는 일을 가리킨다(62:12).

 

 

 

  이 시편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의 시로서, 그 저작자는 다윗, 여호사밧, 히스
기야 등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으며 일반적으로 유대의 한 왕으로  추
측된다. 본시는 개인적인 찬양시가 집단의 찬양시와 어울러져 있어서 예배용으로 적합
한데, 실제로 이 시는 예배시에 사용되어 찬앵대와 예배자들에 의해 함께  불려졌다고
한다.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 섭리를 노래한 본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
어진다. 전반부(1-12절)는 '우리'라고 하는 복수 주체가  암시하듯이  대적으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민족적인 감사를 표현하며, 후반부(13-20절)는 '나'라고 하는 단수  주체
가 암시하듯 기도 응답에 대한 개인적인 감사를 담고 잇다. 이러한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민족과 개인에게 동시에 양면적으로 행해졌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와같
이 전반부와 후반부의 주체가 단수와 복수로서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이  두
부분의 작시자 역시 다른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무리한
추측에 불과하며, 단지 전반부는 민족을 대표해서, 후반부는 개인적인 서원 문제를 다
루는 입장에서 본시를 썼음을 나타낼 뿐이다. 이제 이러한 구성을 염두에  두고  본문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 민족적 차원의 감사 찬양(66:1-12)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로 인해 민족적 차원에서  찬양을
드리는 내용이다. 시인은 그 구원의 역사(役事)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적
적인 권능으로 말미암아 홍해를 마치 육지 건너듯한 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났음을 시
사한다(6절). 이스라엘의 전역사(全曆史)가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 하래 진전되어 왔지
만, 홍해를 가르신 이적적(異蹟的) 은혜양말로 이스라엘 민족의 기억 속에 대대로  전
수(傳受)되기에 족했던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출 14:15이하). 그리고 본시
의 서두는 '온 땅'을 여호와 찬양에로 초대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온
땅'이란 좁게는 이스라엘의 온 백성을 지칭하지만, 넓게는 온 땅의 백성 곧 세계 만민
을(8절)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본문은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이방인들마
도 하나님을 찬양해야만 함을 시사한다. 물론 불신자들은 자신들과    하나님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착오이자 무지이다. 불신자들을 포함
한 모든 인생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존재될 수 있었으며, 또한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에
의하여 그 존재가 유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딛고 사는 이  땅과    자연계도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바 되었으며, 그들이 먹는 모든 양식도 하나님에 의해서 제공된
다(65:9). 이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진리이다.회의주의자르 포함한 모든 불신자들이 믿
든지 안 믿든지간에 그것이 진리라는 엄연한 사실에는 결코 변동이 잇을 수 없다.  사
실 완전한 의미에서의 불신자란 존재치 않는다. 한 조상 아담의 후예들인 인류는,  비
록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게나마 여전히 영성(靈性)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인간
이면 누구나 자연 만물에 스며들어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을  느낄  수  있다(롬
1:19, 20). 그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악한 성향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성령의 부르심에 응하기만 하면,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함께  그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방인도 구원의 반열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신약 시대에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 속에 잉태되어 있었다(사43:5, 6;45:6;59:19;미4:1, 2;슥8:20-23;말
1:11). 특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구원이 땅의 모든 족
속에게 임해야 할 것임을 분명히 언급하셨다(창 12:1-3). 이러한 사실은 이방인인  룻
이나 라합이 구원의 반열에 편입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이방인 구원에 관한  사
상은 분열 왕조 시대의 중반기 이후부터 서서히 싹트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760년  경
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나서는, 하나님이 그 시대에 이미 이방인들에  대한
구원의 역사를 펼치기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본    시편의    기자였을
미지(未知)의 한 유대 왕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고 있던 축복에 참여하기를 초청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찬
양하도록 초청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그 자신이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아  누렸으
며, 이에 대한 감사가 넘쳐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벅찬 감격 가운데 잇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하나니의 은총으로 인하여 찬양하는 중, 자신의 동족인 이스
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다른 이방 백성들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
를 발견했을 것이다. 물론 시편 기자의 초청에 대하여 이방인들이 그 즉시 응답할  수
는 없었다. 여전히 분리주의적 경향이 짙었던 구약 시대에 본 시편이 이방인들에게 알
려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을 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 시편의 성격을 예언
적인 것으로 규명할 수 있겠다.
  만민을 찬양에로 초대하고(1-4절) 그 이유를 밝힌(5-7절) 시인은, 동일한    모형으로
다시 찬양에의 초대(8절) 및 그 이유를(9-12절) 반복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9-12절에
서 시인은 이스라엘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겪어야만 했던 숱한 환난과 역경들마저  하
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놀라운 신앙을 피력하고 있다. 시련을 겪는 동안 이
스라엘은 더욱 강렬한 열성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임재를 갈구하게 되었으며 또 지난날
의 허물과 죄악을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성도에게 있어 환난은 때로는 죄에
대한 징계의 수단이 되며, 때로는 보다 성숙한 신앙 인격을 연마하게 하는 방편이  되
기도 한다.

  2. 개인적 차원의 감사 찬양(66:13-20)
  온 땅의 만민을 찬양에로 초대한 후, 시인은 13절로부터 갑자기 방향을 전환하여 개
인적인 차원에서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의
본문이 1-12절 내용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잇다. 왜냐하면 시인은 이스라엘 민족이 겪
은 공동의 체험을 대표적인 입장에서 일관되게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
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선포하는 바를 들으라고 촉구한 16절  내용
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겠다. 또한 14절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시인은
위기 상황에 몰렸을 당시에 그 환난으로부터 구출되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겠노라고
서원했던 것 같다. 그 환난이란 본시의 전반적 흐름으로 보아 민족적 차원의 재난이었
을 가능성이 높다. 시인은 이스라엘(혹은 유다)의 한 왕으로서 민족의 환난을 곧 자신
의 것으로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특히 주의를 끄는 점은, 시인이 찬양이나 기도를 드림에 있어 필히 갖추어
야 할 두 가지 전제 요건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첫째는 마음에  죄악을  품지
않는 것이다(18절). 하나님은 인생과 달라서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삼상
16:7) 입술로만 찬양한다고 하여 그 찬양을 받으실 리가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자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죄악이나 허물이 있으면 그것부터 회개해야 하
는 것이다. 둘째로는, 하나님이 그 인자히심을 거두지 않으시라는 확신이다(20절). 이
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賞)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한 히브리서 기자의  말과  그맥을
같이 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을 뿐 아니라 바로 그 하나님이 개인과 민족의  역
사 속에 철저히 개입하신다는 성경적인 사상에 투철할 때 비로소 우리는, 먹든지 마시
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을 것이다(고전 10:31). 그리고 하
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을 뿐 아니라(17절), 더 나아가 기도 응답을 받는 축복을  소유
하고 있다(19, 20절)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은총이다. 이교도들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
자. 물론 그들도 기도를 한다. 그러나 그 기도의 대상은 자신들의 손으로 빚거나 만든
우상이다. 심지어 우상 숭배자들은 우상 주위에서 뛰놀며 자기의 몸에 심한 상처를 내
면서까지 기도와 응답을 기다린다(왕상 18:25-29). 그러나 그들이 섬기는 우상은 진정
한 의지처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필경은 파멸과 혼돈으로 인도할 뿐이다. 사실,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에까지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만 해도,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가! 이러한 축복은 그 아무에게도  차별이  없다. 누구나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이 나오기만 하면 이런 은총의 수혜자(受惠者)가 될 수 있는 것이다(요 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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