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지존자(* , 엘레온) - 직역하면 '가장 높은'이며,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이 숭고하고 탁월하신 분인 하나님을 지칭한다. 하나님은 그의 대적이 아무리 악한 음모를 실행에 옮기고 그 성취를 위해 날뛴다고 할지라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다.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 - '은밀한 곳'(* , 세테르)의 문자적인 뜻은 '비밀 장소'로서 누구에게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곳인 성전의 지성소를 암시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그 '어떤 영향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문맥상 어울리는 것 같다. 하나님과 밀접하게 교통하는 자, 곧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자는 세상의 어떤 위협이나 난관에 비착해도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거하는'에 해당하는 '야솨브'(* )를 '왕좌에 앉다'는 뜻으로 보는 학자도 있지만(Dahood) 문맥상 피난처 되시는(14 : 6 ; 46 : 1 ; 렘 17 : 17 ; 욜 3 : 16) 여호와의 품에 '거한다'는 의미가 더 낫다.
전능하신 자 - '여호와'라는 호칭이 그의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본 호칭은 그의 능력 앞에 아무도 설 수 없는 권능의 하나님을 강조한다(출 3 : 7-15 강해, '하나님의 이름' 참조).
그늘 -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날개로 덮는 어미 새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말이다(4절 ; 17 : 8 ; 36 : 7 ; 57 : 1 ; 63 : 7). 어느 학자의 주장처럼 굳이 이곳이 사후(死後)의 영원한 안식처를 뜻한다고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과 연결되어 있는 동사 '거하리로다'(* , 이틀로난)는 함축적으로 '영원히 머무르다'는 뜻도 지니지만 대체로 '밤을 새우다', '숙박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Perowne). 따라서 이 말은 낮의 무더위나 밤의 혹한 은 대적들의 공격으로부터 피해 쉼을 얻을 수 있는 현실적 피난처 혹은 안식처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본절 상, 하반절에는 하나님께 대한 서로 다른 호칭, 그리고 그 의미가 동일하지 않은 처소의 개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본절을 서로 다른 신(神)의 존재 및 그에 따른 서로 다른 상황을 묘사하는 구절로 보는 것은 전혀 터무니 없는 일이다. 도리어 다양한 능력을 갖고 계신 유일한 참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함께 거하는 자에 대한 묘사를 보여주는 구절로 보아야 한다. 특히 여기서 기자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자의 완전한 안전을 강조하기 위하여 히브리 문학, 특히 히브리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대구법을 사용하였다.
=====91:2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 - 여기서 '나의'는 종속 개념을 담고 있는 말로서 하나님이 피예배자에게 복속되는 신들 중의 하나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이방 종교의 피예배자들은 흔히 신이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곧 자신들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로 착각하고 있다) 거꾸로 피예배자가 그분께 전적으로 복속된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하나님은 성도들뿐 아니라 온 우주의 주인이기도 하시다.
=====91:3
이는 저가(* , 키 후) - 이것은 대명사 앞에 접속사가 놓인 형태인데 이와같이 접속사 뒤에 오는 대명사인 경우 강조사가 된다(148 : 5). 여기서는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만 온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Surely he..., KJV, NIV). 사냥군의 올무 - 이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이 계획한 음모, 위협 따위를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124 : 7 ; 141 : 9 ; 잠 6 : 5 ; 호 9 : 8).
극한 염병(* , 데베르 후오트) - 직역하면 '치명적인 염병'인데 70인역(LXX), 심마커스역(Symmachus Versions), 시리아역(Syriac Versions) 등은 본 용어를 '파괴적인 말'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번역은 '염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데베르'를 '말'을 뜻하는 '다바르'로 읽는 데서 비롯된다. 시편 기자가 주로 중상, 모략, 음모. 거짓 고소 등으로 곤욕을 치르었던 사실을 고려할 때 이같은 번역은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91:4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 본 묘사는 분명한 비유인데 저자가 여호와를 날개가 달린 분 로 상상했으리라고 보는 것은 무모한 해석이다(Oesterley). 성경이 하나님을 그 어린 새끼를 보호하는 독수리에 비유한 곳은 있다(신 32 : 11). 천사의 날개 역시 보호의 상징이었다(Kraus). 그러나 본절의 회화적 묘사는 익히 알려져 있는, 새끼들을 돌보는 어미 새의 모습에 근거를 두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사 31 : 5 ; 마 23 : 34).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 '극의 진실함'(* , 아미토)은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에 대한 그분 자신의 신실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손 방패' (* , 소헤라)는 구약 성경에 1회만 등장하는 용어이며 '담으로 둘러삼'을 뜻하는 시리아어 '사하르타'에서 유래한 말로서 탈굼역(Targum) 등에 의하여 '둥근 방패'로 번역되고 있다. 하나님이 언약 백성인 우리 성도를 일생동안 방패로 지키듯이 보호하시는 것은 일차적으로 당신의 언약에 대한 신실성에 연유한다.
=====91:5
밤에 놀램(* , 파하드 라옐라) - '밤에 의한 폭력(공포)'이 그 문자적인뜻이다. 기드온의 공격과 같은(삿 7장) 갑자기 이뤄지는 야간 기습 공격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어두운 밤길을 가며 흔히 갖게 되는 사단의 존재의 의식으로 인한 공포 따위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을 특정한 위험이나 재난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공포나 위협의 요인은 캄캄한 밤중에 닥칠수록 더 강화된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Alexander). 한편, 여호와의 주권과 권능이 미치지 않는 곳이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주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121 : 6).
낮에 흐르는 살(* , 메헤츠 야우프 요맘) - 직역하면 '낮에 날으는 화살'인데 문자 그대로 대적들의 화살 공격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낮에 비치는 태양의 광선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무난할 것 같다(Anderson). 이것은 한낮에 발생하는 일사병 같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 사막 지대에서는 강한 햇빛 때문에 일사병 외에도 각종 질병이 발생한다고 한다.
=====91:6
흑암중에 행하는 염병 - 여기서 '흑암중에'는 '캄캄한 가운데'라는 뜻보다 '갑자기'라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염병'은 문자 그대로 보면 고대 근동에서 흔히 발생하였던 온역이나 전염병 따위가 되겠다. 그러나 근접 문맥인 8절에서 악인이 보응을 받는다는 개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대적'혹은 그 대적의 '살의를 품은 독설'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백주(白晝)에 황폐케 하는 파멸 - 대낮에 초래되는 파멸, 곧 가시적이고 공개적으로 발생하는 파멸을 가리킨다. 또한 파멸(* , 케테브)은 '휩쓸어 버리는 것', '잘라 버리는 것'등을 뜻하며(사 28 : 2), 폭풍, 전쟁, 온역 혹은 기근 따위와 같이 일정한 대상을 완전히 휩쓸어버려 멸망시키는 세력을 가리킨다. 요컨대 본절은 언제 어떤 형태로 재앙 및 대적이 밀어닥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보호를 신뢰하는자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으로 강변하고 있다.
=====91:7
천인(千人)이 네 곁에서, 만인(萬人)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가까이 못하리로다 - 이 표현은 출애굽 기사의 몇몇 구절들의 반복으로 보이기도 하고(출 12 :23 ; 14 : 30), 전쟁 용어들로부터 그 용어들을 빌려온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삼상 18 : 7), 본 비유 배경이 전쟁터인 것 같지는 않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닥쳐오는 재앙이나 불행의 크기에 상관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자가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잠 12 : 21).
=====91:8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 말하자면 악인이 보응받는 것, 징벌받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사악한 기쁨에 들떠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공의를 명백히 나타내실 것을 강조하듯 말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이 악인의 보응에대한 언급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말하자면 인생 역사 동안 모든 악인이 반드시 현실적 징벌을 받지는 않으나 징벌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악인에 대한 징벌은 하나님의 공의가 엄존(儼存)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방편이 된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이 입증되는 것을 목격하면, 성도는 더 큰 믿음과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게 된다. 이제 모든 악인이 반드시 징벌을 받을 때가 오는데 그때는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하여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이다(마 24 : 44).
=====91:9,10
본 두 절에서도 시인은 여호와의 보호 아래 있는 자의 안전함에 대해 거듭 확언하고 있다. 물론 신실한 성도에게도 '화'(禍)나 '재앙'의 위협이(10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한 그 어떤 위협 요소들도 성도를 상하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롬 8 : 28, Kidner).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 마치 아버지의 집을 자신의 집으로 삼듯이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동행하기를 선택하였다는 뜻이다.
장막 - 유목의 생활 환경을 묘사할 때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표현 중의 하나이다(말 2 : 12). 이는 목초지를 찾아 돌아다니는 자들의 거처일 뿐 아니라 유목민의 제반가산(possessions)을 뜻하기도 하는 용어이다.
=====91:11
사자들(* , 믈라킴). '보내다'의 뜻을 가진 '라카흐'(* )에서 유래했으며 동사형은 구약 성경에는 나오지 않으나 히브리어 동족어인 아라비아어, 우가릿어 등의 문서에는 나온다(Eichrodt). 구약 성경에서 이 말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수 7 : 22) 혹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출 23 : 20)이나 대언자(학 1 : 13) 등을 뜻할 때 사용된다. 본 시편에서는 신실한 자들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천사들을 가리킨다(마 4 : 11 ; 눅 22 : 43).
=====91: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 각별한 돌보심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이며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독수리 날개로 너를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출 19 : 4) ;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셨으나'(사 63 : 9).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 번영과 안전을 암시하는 표현이다(37 : 31 ; 잠 2 : 23, Alexander). 한편, 본절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에 의해 인용된 말이다(마 4 : 5, 6).
=====91: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 '사자'와 '독사'는 모든 실제적인 그리고 잠재적인 대적들 및 위험들의 상징이다. 따라서 '사자'와 '독사'를 밟는다는 것은 대적 및 위험들을 물리치고 제거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이 표현을 마치 사자의 분노를 잠재우듯이 그래서 순한 양처럼 만들듯이 혹은 독사의 해독성 치아를 뽑아버리듯이 위험 가운데서도 안전함을 뜻하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겠다(Barnes). 여기서 '사자'에 해당하는 '솨할'(* )은 성경상으로 산문에서는 볼 수 없고 운문에서만 나타나는 용어이다(욥 4 : 10 ; 10 : 16 ; 28 : 8 ; 잠 26 : 13 ; 호 5 : 14 ; 13 : 7).
젊은 사자(* , 케피르) - 특히 용감하거나 사납고 폭력적인 존재를 언급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17 : 12 ; 삼하 17 : 10).
뱀(* , 타닌) - 출 7 : 9, 10, 12에서는 '뱀'으로, 창 1 : 21에서는 '큰 물고기'로, 74 : 13 ; 148 : 7 ; 사 27 : 1 ; 51 : 9 ; 렘 51 : 34에서는 '용'으로, 애 4 : 3에서는 '들개'로 각각 번역되고 있는데 '뱀'으로 번역 가능한 점을 고려할 때 본 구절과 상반절은 평행구를 이루고있다 하겠다.
=====91:14
저가 나를 사랑한즉 - '사랑한즉'에 해당하는 '하솨크'(* )는 신명기에 자주 나오는 용어로서 한 사람의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창 34 : 8 ; 신 21 : 11),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신 7 : 7 ; 10 : 15) 혹은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헌신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헌신)'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진실하신 성품을 체험하고 깨닫는것 곧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하반절)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9 : 10) 이 두 표현은 공히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순종에 기초한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91:15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결과의 하나로 하나님은 그의 성도가 올린 기도에 응답하사 그의 필요를 채우실 뿐 아니라 환난 중에서도 그와 동행하신다는 것이다.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의 친밀한 관계를 지속시키신다는 것, 곧 그를 자신의 친구처럼 대하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높으신 하나님과 친구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영화로운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Barnes)?=====91:16
장수(長壽)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이었던 장수는일반적으로 신적(神的) 은총의 외형적 표시로 간주되었을뿐 아니라(21 : 4 ; 신 30 : 20 ; 잠 3 : 2)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순종의 결과로 간주되었다(출 20 : 12 ; 23 : 26).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 여기서 '구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자가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는다고 말할 때의 그 '구원'이 아니다. 왜냐하면 문맥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그 약속에 순종하여 땅위에서의 축복인 장수를 약속받은 자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구원'이란 현실을 살아가면서 당하게 될 무수한 곤경들로부터의 구원 혹은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종국적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까지 인도되는 영원한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그는 땅 위에서 하나님과 친구로서 영화롭게 살아갈 뿐 아니라 영원한 존재이신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나누는 축복 상태로까지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험한 인생의 여정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최고, 최후의 요새임을 고백하고 있는 본
시는 1굳건한 피난처 되신 하나님에 대한 선언적 고백(1, 2절) 2선언에 합당한 사례
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회상적 고백(3-13절) 3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부분(14-16
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시의 저자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견해가 제시되
고 있다. 유대의 전통은 본시가 신32, 33장의 내용과 유사한다는 점을 들어 모세가 저
자라고 말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다윗이 백성을 계수(計數)한 죄로 말미암아 백성들
에게 임했던 형벌인 온역(瘟疫)이 일어났을 때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삼하24장).
이러한 견해는 70인역(LXX), 갈대아역, 벌게이트역, 수리아역, 아랍역, 에티오피아역
의 지지를 받는다.
이처럼 본시의 저자와 역사적 배경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하겠다. 다
만 본시가 인생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환난과 어려움을 깊이 체험한 시인의 굳
건한 믿음의 고백임을 감안할 때, 그 배경은 개인적 인생과 공동체적 이스라엘의 수난
역사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본시에 대하여 어떤 학자들은 제
의적(祭儀的)배경과 연관지어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왕이 대적의 위협에 처해
있거나 전쟁터에 출전할 때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위로와 격려를 주기 위해 사용한
시편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삶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참배자에 대한 제사장의 선언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본시는 46편과 유사한 내용과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감정의 심한 굴곡을 담
고 있는 '비탄시'와는 달리 초기 일관 하나님의 변함없는 보호와 이도를 확신하고 있
는 '신앙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시인의 신뢰는 하나님에 관한 확신에
근거하고 있는 바, 오늘날 흔히 발견되는 일시적이고 심리적인 믿음과는 질적으로 전
혀 다르다. 시인은 이스라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상기하면서 하나님을 의뢰하
는 자에게 보호와 구원과 영화가 베풀어질 것임을 확고하게 믿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단지 인생의 모든 여정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지키신다는 차누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의 재림으로 인하여 완성될 완별한 의(義)의 실현을 의미
한다. 이처럼 본시에 대한 메시야적해석의 가증성은 특히 12, 13절에서 구체적인 실례
를 발견할 수 있다. 12절은 사단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 사용되었고(마4:6;눅
4:10, 11), 13절은 메시야 시대에 임할 만물과 인간의 조화로운 상태를 묘하는 데 인
용되었다(사11:8). 이는 진저한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가져온 하나님 나라
의 완성된 모습을 예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누리는 안전(安全)에 대해 다양한 비유적 표현을 사
용하여 설득력있게 묘사하는 본시를, 세단락으로 나누어 각각의 내용과 의미를 좀더
심층적으로 고찰하여 보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험난한 세상을 안전
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1. 선언적 고백(91:1-2)
전체 시의 핵심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본연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체
득한 시인의 신앙적 선언적 고백되고 있다. 본연을 좀더 세분하여 살펴보며, 명제적
선언(1절)과 실존적 고백(2절)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시인은 먼저 하나님을 지존자(The
Most High)와 전능하신 자(Almighty)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한 후에(1절) 이어서 명제적
으로 선언한 그 하나님이 바로 자신의 실존적인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다(2절).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여호와 하나
님은 전능하신 분으로서 만물 중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하신 지존자(The Most
High) 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이기적인 부족(部族) 신이 아니라 전 이
류의 섭리자이시다. 2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주인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과 깊은 인격적 관련을 맺고 있는 분이시다. 전자에서 하나님의 초월성이 갈조되
었다면, 후자에서는 하나님의 내재성이 부각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초월성이 손상받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실존속에 내재할 수 있는 독특한 분이심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본 대목은 두 절에 불과하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과 함축적인 내용으로 전체
의 핵심주제를 제시해 준다. '지존자'와 '전능하신 자'(1절)라는 단어의 심상(心象)
속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요새'(2절)와 '피난처'(2절)로서 전혀 손색이 없음을 제시하
고 있으며, 그분을 믿는 믿음 안에서 '황폐케 하는 파멸'(6절)조차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늘'(Shadow)과 '은밀한 곳'
(Shelter)이라는 단어의 의미 속에는 이미 '피난처'와 동일한 뜻을 함유하고 있기도
하다. 시인은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참성도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됨을 요약적으로 진술한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궁극적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 안에 참 평안과 안식을 누려야 할 것이다(신32:10;수1:5;사
41:10;고후12:9, 10).
2. 해명(解明)적 고백(91:3-13)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선언한 내용에 이어지는 본연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
하여 구체적인 사실들은 열거하면서 증거하고 있다. 시인의 선언이 한낱 공언(空言)이
아님을 보여 주는 본 단락은 1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환난에서 구원하시
는 하나님에 관한 부분(3-8절)과 2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일으킬 수 있는 결과 혹은
가능성(9-13절)에 관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본 단락에서 시공(詩空)을 가리지 않고, 모든 종류의 방법으로 인생을 해치려
고 하는 위험들을 나열하고 있다. 인생의 위험은 밤과 낮이 따로 없다(5, 6절). 또한
그 방법도 다양하다(3절). 부주의함으로 인하여 사냥꾼의 올무(3절)와 같은 원수의 모
함에 걸리는 경우도 있고(10:8, 9절), 극한 염병(3절)처럼 불의에 엄습하는 사고도 있
다. 또한 원수들에 의해서 적극적인 공격을 당하는 위기 일발의 사태에 직면하기도 한
다(7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위험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당신
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보호하는신실한 방패가 되신다(4절). 방
패가 되신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적극적인 공격을 무력화시키실 뿐 아니라(7절), 그 악
인을 종국적으로 파멸시키실 것이다(8절).
한편 본 단락에서 시인은 피난처 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시행을 병렬적으로 배열하고, 단어 선택에 있어서는 구상적(具象的) 어휘를 채
택하고 있다. 즉 '사냥꾼의 올무'와 '극한 염병'은 인생이 당하는 곤란을 중첩적으로
병렬시키는 부분이고, 이러한 표현은 6절과 7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것
은 인생을 해치려고 하는 사단의 올무가 매우 치밀하게 짜여 있더라도 결코 하나님의
요새를 공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부각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구상적 어휘
선택을 통해서 더욱 부각되고 있는데, 특히 위험(3절)과 보호(4절)의 이미지를 보여주
는 단어들이 그 실례가 되고 있다.
또한 본 단락은 과거의 회상과 미래에로의 가능성이 중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데, 회상부분은 4-8절까지이고, 미래 부분은 3, 9-13절까지이다. 4-8절에서 시인은 자
신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던 하나님을 현재의 시점에서 회상하고
있으며, 나머지 절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통하여 구비된 믿음과 확신을 현재 시
제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믿음의 가능성을 철저히 현재의 시제로 말
할 수 있을 만큼 굳건한 신앙을 소유했음을 알 수 있다.
3. 하나님의 응답(91:14-16)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으로 선포되는 본 단락은, 앞 부분에서 언급된 시인의 고백
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응답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시인은 여기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이유를 세 가지로 열거하고 있는데 1하나님에 대한 사랑(14a절) 2하나님
에 관한 지식(14b절) 3간절한 간구(15절) 등이다. 특별히 여기서 '사랑'은 이해 타산
속에서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는 조건적 애정이 아니며, 오직 대상만을 위해 헌신하는
무조건적 애정을 뜻한다(신7:7;10:15). 또한 '안다'(14절)라고 하는 신(神)지신 역시
이론적인 측면에서의 앎이 아니라 대상을 전인격적으로 이해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
다고 하겠다(사52:6;렘48:17). 따라서 시인은 이런 차원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지식
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올바른 기원이 가능했으며(14절),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을 촉발
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인의 정당한 신앙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은 모든 세대에 변치 않는 표본을 제시한다.
이처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믿고 의지하는 삶은 궁극적으로 존귀와 축복을
제공받는다(빌2:15;골3:12;벧후2:9;계17:14). 하나님을 향한 간구는 반드시 응답을 받
는다(왕상3:7-14;대하1:7-12;7:14;요일3:22). 그러므로 우리는 시인을 본받아서 하나
님의 존재와 성품을 정확히 인식하고 모든 필요를 정당하게 간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69:16;109:21;단9:18).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본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하나님
께서 견고하게 보호하여 주심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지식과 사랑
을 통해 올려지는 기도를 흠향하시고 위로와 축복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닌
이 예측할 수 없는 위태로운 삶의 상황에서 유일한 피난처 되신 하나님을 소망했던 것
처럼,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황금 만능주의와 말처적 신경을 자극하는 항략주
의 그리고 사신적(死神的) 사상이 어우러진 음란한 문화 속에서도 낙망하지 말고 끝까
지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하여 최선의 노력으로 경주해야 한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얻은 자의 유일한 특권이다. 비록 사단의 조종을 받는 세
속의 세력이 마치 독사처럼, 굶주린 사자처럼 가공할 만한 괴력으로 공격해 온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의 요새 안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손끝 하난 상하지 않
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손에 쥐어 주신 작음 물맷돌을 가지고 적의 심장부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비록 세상이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일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힘찬 걸음을 내딛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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