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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
보수(報讐)하시는 하나님 - 여기서 '보수'는 단수가 아닌 복수형 '네카모트'(* )가 쓰였는데 이것은 '완전한 복수'를 의미하는 강조사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피억압 자를 구원하시고 억압자는 완전한 복수, 곧 철저한 형벌로 징벌하시는 분이시다. 복수는 하나님의 것이니 우리는 그분의 복수하심을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신 32:35, 이외에도 사 35:4;겔 25:15 등을 참조하라).

=====94:2
일어나사(* , 힌나세) - 문자적인 뜻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이다. 마치 앉아계신 하나님에게 일어나기를 요청하는 듯한 이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은 악인에게 심판 내리기릍 소원하는 의인의 절박한 요청 의사를 반영하고 있다(76:9;사 ) 3:13). 그러한 요청을 하는 근거는 하나님이 '땅의 심판자'(창 18:25)가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요청하는 문맥에서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또 다른 표현으로는 '쿠마'(* ), '우라'(* ) 따위가 있다(7:6).
교만한 자(* ,게임) - '일어 서다','쳐들다'는 의미의 가아'(* )와 연관을 맺고 있는 이 용어는 하나님에 대항하며 자신을 쳐드는 자들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123:4;욥 40:11,12;사 2:12;렘 48:29). 이들의 죄의 내용은 헛된 교만뿐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롤 거절하는 완악한 태도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롤 거절할 때 그들의 대인 관계는 왜곡될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뚱이나 이웃의 사정과 관계없이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계획을 짜고 그것을 진헹시키려고 온갖 술수를 동원하기 마련이다.

=====94:4
저희가 지꺼리며 오만히 말을 하오며(* , 야비우 예다베루 아타크) - 두 동사 '예다베루'(* ), '야비우'(* )가 한 목적어 '아타크'(* )를 갖고 있는 형태이니, 정확히 직역하면 '그들은 교만한 것들을 내쏟꼬 말하였다'이다. '내쏟다'는 샘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용어인데, 여기서는 샘이 그 속에 가득한 물을 내쏟듯이 그 속에 가득한 교만을 독설로 내쏟는 악인의 모습을 그리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 두 동사는 교만한 자가 거침없이 그 교만을 말로 토해내는 모습을 묘사할 때 흔히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삼상 2 : 3).

=====94:5
저희가 주의 백성을 파쇄하며 - '파쇄 하며'에 해당하는 '다카'(* )는 흔히 상징적으로 사용된다. 욥이 그의 친구들의 말로 눌림을 당할 때 이 용어가 사용되었고(욥 19:2), 연약한 자가 왜곡된 판결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고통 당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잠 22:22). 본절에서는 그와 유사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지도자들, 곧 악인들의 부당한 법집행으로 인해 억압 당함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143:3).

=====94:6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 하며 - 법 집행 관리들의 대내적인 폭정의 한 예를 고발하는 대목이다. 약자 보호는 강한 자 그리고 법 집행 관리의 의무였다. 특히 과부, 나그네, 고아 등은 하나님의 특별한 돌봄의 대상이었기 때문에(82:3) 그들을 향한 학정이야말로 배나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같은 학정은 특정한 한 시대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 전 역사 속에 일반화되어 있었다(사 1:15;렘 7:5;겔 22:7;미 3:1-4;말 3:5 등). 여기에서 '죽이며', '살해하며' 등의 서술적 표현들은 악한 관리들이 과부, 나그네, 고아로부터 생명과 같은 그들의 생필품을 늑탈하거나 문자 그대로 그들의 생명을 해하기까지 한 것을 뜻한다. 즉, 힘없는 계층인 사회적 약자들이 가진 소량의 소유마저 빼앗기 위하여 살상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악행자들의 비열하고 잔혹한 실상에 대한 암시로 보면 적절하겠다.

=====94:7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생각지 못하리라 -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선과 악에 대해 관심이 없으시다는 것이다(10:11;73:11;욥 22:13). 이 같은 해석은 당시 이스라엘의 악한 관리 및 지도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있었던 것으로 간주케 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있었으나 믿음이 없었던 이유와 아울러 악행에 대한 보응을 즉각적으로 받지 않은 이유로 인하여 악행을 행하고 이 같은 판단을 내리게 된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 고백은 무신론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선행을 하기보다는 가증한 소행을 일삼는 자들을 비난하고 있는 성경 구절이 이것을 간접 지지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4:1).


=====94:8
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 '우준한 자들'(* , 보아림)은 '동물처럼 잔인하게 되다'는 뜻인 '바아르'(* )의 분사형이다. 이 사실을 고려하여 재번역하면 이렇다. '네 민족들 가운데서 마치 동물들처럼 잔인하게 행동하였던 자들이여'. 몇몇 영역본들은 '보아림'을 '(가장) 잔인한 자들'(ye brutish, KJV) 혹은 '가장 미련한 자들'(dullest, RSV)로 번역하고 있다. '백성'으로 번역된 '암'(* )을 항상 이스라엘로 국한할 필요는 없으나 여기서는 이스라엘에게 적용되고 있다.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 '모든 지혜의 근원인 바 여호와 경외하기를 언제나 배우겠느냐'는 뜻으로 이해된다(19:9;25:12). '언제나'로 번역된 '마타'(* )는 어떤 상태나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음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악인이 여호와 경외하기를 잊고 악행한 기간이 몹시 길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구절로 보아야 한다.


=====94:9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 하나님 자신이 그 같은 기능을 소유하지 않으신 채 듣는 기관을 창조하거나 보는 기관을 창조하실 수는 없겠다는 것이다. 본절은 하나님이 인간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인간과 유사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도리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조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하며, 따라서 그 어떤 악행도 하나님의 목전에서 속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에 그 의도가 있다. 하나님은 악인의 공개적인 악행뿐 아니라 숨겨진 악행 및 속삭이는 음모까지도 보고 들으신다.

=====94:10
열방을 징벌하는 자...징치(懲治)하지 아니하시랴 -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임의적으로 평행적 대구를 만들기 위하여 본절을 두개의 의문문으로 나누고 원문에 존재하지 않는 '그가 알지 못하시랴? '라는 구절을 후미에 삽입하고 있다(He that chastiseth the heathen, shall not he correct? he that teacheth man knowledge, shall not he know? , KJV;Does he who disciplines nations not punish? Does he who teaches man lack knowledge?, NIV).그러나 굳이 이러한 변형을 시도하기보다는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원문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본 번역을 좀더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인류의 위대한 교육가, 곧 그들이 소육하고 있는 온갖 지식을 부여하신 자가 그들을 징책하고, 바로잡고 훈계할 권리가 없겠느냐? ' 이것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도덕적 징치를 암시하는 말이다.

=====94:11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 아시느니라 - 원문상 본절은 '왜냐하면'의 뜻을 지닌 접속사 '키'(* )를 첫 단어로 하는 하반절과 그 앞의 상반절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상반절을 번역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들을 아신다'이다. 그 뜻은 동물처럼 잔인한 악인들이 즐겨 상상하는 바처럼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모르시거나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며 잠시 동안 그 행위를 징벌하지 않고 두시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가장 은밀한 생각들까지 읽고 계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본 구절을 고전3:20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 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하반절은 모호한 듯하지만 명사 및 대명사의 성(性)을 분명히 알면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우선 하반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헛되기 때문이다'. 여기의 대명사 '그들'은 '생각들'이 아닌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명사 '그들'의 성(性)은 남성이어서 이 대명사가 가리키는 명사 역시 남성이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생각들'은 원문상 여성으로 되어 있고 '인간'은 남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복수이고 '인간'이 단수인 문제는 '인간'을 대표 단수로 보면 풀린다. 따라서 하반절의 적절한 번역은 '왜냐하면 인간들은 헛되기 때문이다'가 되겠다. 특히 여기서 '헛됨'으로 번역된 '하벧'(* )은 '호흡','연약함' 따위를 의미한다. 이런 사실을 재종합하여 본절 전체의 의미를 규정하면 이렇다. '인간은 호흡처럼 연약하고 그 능력이 제한된 존재이다. 심지어 그의 생각까지 제한되어 있고 빈약하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의 유한한 생각들을 아시고 헤아리신다'. 결국 본절은 9,10절에서 제기된 물음에 대한 답변에 해당한다(Anderson).

=====94:12
주의 징벌을 당하며(* ,테야스레누) - 원형인 '야사르'(* )는 '가르치다', '교훈하다' 혹은 '징책하다'의 두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전자의 의미로 볼 때 상반절은 하반절과 동의적 평행구를 이루게 된다. 후자의 의미로 볼 때도 무리는 없는데 이것은 단기간의 징책은 신적(神的) 교훈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8-11절에서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인의 행위의 우매함올 비난한 저자는 이제 방향을 바꾸어 징책을 받고 있든 받지 않고 있든 간에 하나님의 법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복된 자임을 강조하고 있다(신 8:5;욥 5:17).

=====94:13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 나게 하사...평안을 주시리이다 - 원문을 따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악인을 위한 구덩이가 다 파질 때까지, 역경의 날들로부터 그에게 평안을 주신다'. 보통 '구덩이'(* , 사하트)는 짐승을 잡기 위한 구덩이 혹은 지하 세계(음부)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상징적 의미인 '완전한 보복' 혹은 '완전한 멸망'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49:9, Anderson). 또한 '역경의 날들 동안'이란 하나님이 악인의 행위를 아직 심판하지 않으셔서 악인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시기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본절은 비록 악인이 완전한 심판을 받는, 완전한 멸망의 날이 아직 이르지 않아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자는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94:14
여호와께서는...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 여기에는 5절의 탄원에 대한 응답이 요약되어 있다. 그 내용은 일시적인 삶의 어려움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그 영원한 유산을 잃지 않게 되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배신하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택한 것을 기뻐하실 뿐 아니라 그들을 택한 하나님 자신의 명예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너회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삼상 12:22).

=====94:15
판단이 의로 돌아가리니 (* ,아드 체데크 야슈브 미쉬파트) - 직역하면 '판결이 의에게로 귀결될 것이다'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판결은 결국에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명백히 드러내는 내용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좀더 포괄적인 범주에서 이 의미를 풀면 인간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며 처음에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으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의의 편에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영향력 때문에 죄로 인해 오염되긴 했지만 세상 속에는 의의 형태들이 존속하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생의 행위들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내려지고 마는 것이다.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으리로다 - '마음이 정직한 자'란 하나님께 정직하며 인간을 대함에 있어서 공평한 자를 가리키나 문맥상으로는 '의로운 자'가 되겠다(7:10;119:7). 한편 '의로운 자'가 좇아야 할 대상은 생략되어 있으나 '의'인 것이 분명하다. '의로운 자'가 '의'틀 좇아야만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은 의의 편에 계셔서 '의'의 손을 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94:16
누가 나를 위하여...치며...칠꼬 - 기자는 본 시편 앞부분에서 악인이 그의 땅에 침입해와서 누구의 저지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유산을 유린했던 사실을 상기한 바 있는데(3-6절) 바로 그 시점에서 저자는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자신을 위해 일어나서 그 대적을 물리쳐 줄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같이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적시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강조적으로 밝히기 위해서이다.

=====94:17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 키므아트 솨크나 두마) - 직역하면 '곧 침묵 속에 거하였올 것이다'이다. 여기에서 '침묵'은 문맥을 고려하고 또 본 용어가 '스올' 혹은 '무덤' 따위로 번역된 115:17 등을 참조할 때 '무덤'으로 번역해도 무난하겠다. 벌게이트역(Vulgate)이나 70인역(LXX)도 '음부' 혹은 '지옥'으로 번역하고 있다. 흔히 성경은 무덤을 '조용한 곳', '침묵의 땅'으로 묘사한다(암 8:3 참조).

=====94:18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 이것은 갑자기 당한 상황이 아닌 점진적으로 되어온 최악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말하자면 어뗬 위험한 일을 갑자기 당하여 지르는 탄성이 아니라 인내로 견디어 오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태에 이르러서 내뱉은 절망적 탄성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진, 거의 무덤 앞에 이른 듯한 상황'이라고 해도 되겠다(Barnes).
주의 인자하심(* ,하스데카) - '당신의 견고한 사랑'이라고 번역하면 그 의미가 더 확실히 와 닿는다. 원형 '헤세드'(* )는 언약적 용어이다. 즉, 하나님과 그 백성이 맺은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배려와 사랑을 묘사할 때 흔히 사용되는 용어이다. 하나님께서 환난의 때에 고통당하는 그의 백성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까닭은 바로 이 언약 때문이다(20:3;41:3;119:117).

=====94:19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 베로브 사르아파 베키르베) - 직역하면 '나의 안에 나누인, 혹은 수많은 생각들이 있는 가운데'이다. 이것은 혼란스럽고 근심스럽고 짐이 되는 많은 일들 때문에 헛되고 무익할 뿐 아니라 목적이나 방향도 없는 무수히 많은 공상과 잡념이 오고 가는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욥 4:13;20:2).
주의 위안이 내 영흔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 여기서 '위안'으로 번역된 '탄후메이카'(* )의 원형 '탄후밈'(* )은 강조 복수 명사로서 하나님(욥 15:11) 혹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급된 위안(욥 21:2;사 66:11;렘 16:7)을 말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복잡하고 쓸데없는 생각에 가득 차서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당신께서 직접 혹은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그 혼란을 제거하시어 그 마음에 평안을 주신다는 것이다.

=====94:20
율례를 빙자하고 잔해를 도모하는(* ,요체르 아말 알래호크) - 직역하면 '율법에 의하여 해악을 꾸미는'이다. 율법의 그늘 속에 그 불의를 숨긴 채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가리킨다. 즉, 율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체하면서 오히려 악을 행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고려할 때 본구절은 '율법을 대항하여 해악을 도모하는'으로 의역해 볼 수도 있겠다.
악한 재판장(* , 키세 하우오트) - 여기서 '악한'으로 번역된 '하우오트'(* )는 '파멸', '멸망이란 뜻도 내포한다. '입을 쩍 벌리고 있다'(5:9)는 의미로도 번역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 용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삼킬듯이 달려드는, 그래서 그 상대를 삼켜 멸망시키는 어떤 존재에 대한 묘사를할 때 사옹되는 용어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재판장'으로 번역된 '키세'(* )는 원래 '심판의 좌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문맥상 이 용어는 거짓된 정의의 가면을 쓰고 그 가진 권력을 남용하여 예배 공동체를 압박하는 악한 지도자를 묘사하는 용어로 보면 되겠다. 그 가진 권력을 남용하며 예배 공동체를 억압 멸망시키려는 악한 지도자는 하나님의 큰 진노률 유발시키기 마련이다(사 10:1-4).

=====94:21
저희가 모여...치려 하며 - 이에 해당하는 '야고두'(* )는 전쟁 용어인 '공격하다', '치다' 등의 뜻인 '가다드'(* )에서 유래된 단어이다(렘 5:17; 미 4:13). 그러나 본 구절은 전쟁에 대한 암시를 준다기보다는 기자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그 대적들이 마치 전쟁을 일으키듯 소란을 피우며 덤벼드는 모습을 묘사하는 구절로 보면 되겠다(Barnes).
무죄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려야 하나(* , 담 나키 야르쉬우) - 문자적인 뜻은 '결백한 피를 정죄하다'이다. 이것은 악한 재판장이 이득을 얻기 위하여 무죄한 자에계 사형을 선고하는 것을 가리킨다(왕상 21: 8-16;마 27:4).

=====94:22
...이시요 - '예히'(* )는 흔히 '...가 되시며'로 번역되며 완벽한 확실성을 미하기도 하는데 본절의 경우 그런 의미로 쓰였다. 말하자면 '확실히...가 되며'가 정확한 번역이다.

=====94:23
끊으시리니...끊으시리로다 - 70인역(LXX)에서는 동일한 이 두 동사 중 하나를 생 략한다. 아마 70인역 역자는 맛소라 본문(MT)이 중복 오사(誤寫)된 것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본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철저한 보응이 기필코 실현되리라는 확신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반복법을 통해 시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있다 하겠다(7:16 등).

 

 

 

   악한 세력이 관영하는 부정의의 시대에 부당한 핍박을 당하고 있는 한 시인의 비탄
과 호소 그리고 소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본시는  1악인에 대한 고발  부분(1-7
절).  2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 부분(8-11절)  3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믿음의  고백
부분(12-23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시의 역사적 배경에 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하고 있다. 탈무드에는  본시
에 대해 수리아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부른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
에 드러난 이스라엘의 원수는 이방 국가로 볼 수 없고 이스라엘 민족 중의 압제자임을
확실하기 때문에(6, 8절), 이러한 의견은 거절된다. 사실 우리는 본시의 구체적인  배
경에 대해 알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가 악인의 부당한  처지를  간절하게
호소하는 '비탄시'(lament)로 분류하는 데 별다른 이견(異見)이 없다. 그런데  본시를
개인적 성격과 집단적인 성격으로 구분하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본시의
전분부(1-15절)는 집단적인 성격으로 구분하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본시
의 전반부(1-15절)는 집단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후반부(16-23절)는 개인적인 측면이
주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학자들이 본시를 두 개의 다른  시가
편집되어 이루어졌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하지만,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였
다. 사실 본시는 '전공 동체적인 문제'(the whole communitys problem) 를  '대표적인
개인'(arepresentative person)의 문제로 환원하여 '전체성'과 '개인성'을 동시에  강
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본 시는 드라마틱한 재판 광경을 연상케 해 주는데, 여기서 시인은  재판장이
신 하나님께 악인의 범행을 낱낱이 고소하는 검사의 입장에 서 있다. 먼저 악인의  범
행에 대해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고발하고 이어서 공의의 심판에  대한  소망을
피력한다. 특히 악인에 대한 복수의 정신이 매우 고조되어 있는데, 여기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비복음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시인의 복수심은 개인적
인 원한에 대한 한풀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시인은 악인의 압제로 인해 언약 공동테가 붕괴되는 상황은 결국 한나가의 고의
와 영광에 해(害)가 된다는 관점에서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의 복수심은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
히 지녀야 할 의문(義問)이라고 볼 수 있다. 본시에 드러난 시인의 적개심은 이기적이
고 종파적인 복수심과는 구별되며, 또한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맹목적 원한과도 분명히
다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본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연대성을 파괴하는  악인들의
범죄를 실랄한 언어로 통박(痛駁)하던 선지자들의 외침과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前) 시편(93편)에서는 하나님이 왕으로 묘사되었던 반면 본시에서는  지판
장으로서 부각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이 같은 상이한 묘사는 당시 이스라엘의 신정
정치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오늘날의 정치  형태
와는 달리 행정권과 사법권이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사나
왕이 전권을 행사했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볼 때, 왕과 재판장은 한  하나님의  두
가지 기능을 반영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고난받는 의인의 비탄에 찬 고소가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소망으로  전환되는
지에 대해 보시를 몇 단락으로 나누어 좀더 심층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악인에 대한 고발(94:1-7)
   '비탄시'의 성격을 지닌 본시의 성격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본  단락은
일종의 원시적인 재판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악인의 압제를 받는 시인의 고소
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물론 여기에 드러난  재판적
인 요소는 현대의 재판과는 달리 허술한 측면이 엿보이지만 기본적인 재판 구성의  요
건은 모두 갖추고 있다.
   1 재판장:보수(報鬚)하시는 하나님(1절). 시인은 먼저 자신의 고소를 하나님께  하
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실 지판장으로 보고 있기 대문이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을 '보수하시는 하나님' 즉 '복수의 하나님'(God of Vengeance)
으로 이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
에게는 '보응하시는 하나님'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러한  사상
은 구약의 정신 가운데 면면히 흐르고 있다(창18:25;신32:39;렘51:56).  물론  이러한
'복수의 하나님'은 자기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과 이방인에 대한 무조건적 심판을
행사하는 맹목적인 부족신과 수호신이 아니라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시
다. 비록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상대적 우선권'을 주어
선택하신 것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원칙
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냔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중에서도 불순종
하는 악인을 심판하셨고 이방인 중에서도 순종하는 자에게는 사랑의 은혜를 입게 하셔
서 자녀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을 심사 숙고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세
상 만물을 공평하게 판단하시는 의로우신 분임을 알 수 있다.
   2 피고인:악인(3절). 원고인 시인은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피고인으로 등장한  악인
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여기서 악인에 대해 이방인 혹은 이방 국가를 가리킨다는
의견도 있지만 '과부'와 '나그네' 그리고 '고아'를 살해하는 문제는 분명히  이스라엘
공동체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출22:22;신24:17). 또한  시인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반복법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볼  때(3절),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 내에서 악인의 압제가 극에 달했음을 짐작케 해  준다.  시인은
악인을 교만한 자(2절)라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자신의 악행을  '야곱의  하나
님'이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7절) 방자한 태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3 죄목:과부, 나그네, 고아를 살해함(6절).  악인의 가시적인 죄목은 과부와  나그
네 그리고 고아를 살해한 것으로서 명백산 실정법 위반이다. 특히 이 같은 죄목은  하
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중대한 죄악으로 지칭되었다(출22:22-24).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과부와 고아들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표시하셨고,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에  대
해 아내와 자식들을 과부와 고아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강력한 어조로 경고했다.  이처
럼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보호를 표명하신 것은 매우 심오한  신학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고대근동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계층으로  분
류되었던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에 대해서 특별법을 제정하실 만큼 관심을 표명한
것은 단지 그들의 안전과 보호라는 개인적인 이유를 넘어서서 언약의 신실한 이행이라
는 구속사적 성격을 함축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
한 경륜을 온 세계 만방에 드러내기를 원하셨다(출19:5, 6). 인류가 타락으로  말미암
아 구원의 소망을 상실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언약 백성으로 삼으
신 사실은 인류구원을 위한 서곡이었다. 그런데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하나님의 거룩
을 만 천하에 드러내어야 할 특권을 가지고 있는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를 압제하는 일은 자신들의 위치를 망각한 심각한 반역인 것이다.  하나
님의 언약적 관심의 범주에 있는 약한 자를 살해하는 행위는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의 본질을 파괴하는 중대한 죄악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무지한  교만
(pride)을 의미한다(7절). 이상의 사실을 통해 악인의 개인적인 죄는  언약  공동체를
파괴하고(5절)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반대하는 죄(7절)로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4 형량:상당한 형벌(2절). 시인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요청하는 악인의 구형은 단
지 '상당한 형벌'임을 보게 된다. 여기서 '상당한 형벌'이라 함은 악인의 죄악에 비례
하는 형량을 말하는 것으러서, 시인이 이 같은 애매모호한 구형을 청구하는 것은 심판
의 최종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신32:35). 그러나  성경
의 전체적인 맥락을 상고해 볼 때 악인의 상당한 형벌은 영원한 멸망임이 분명하다(마
25:41).
   이상과 같은 재판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본 단락은 원고(原告)인 시인의  거듭되
는 절규(1, 3)로 인해 더욱 비탄과 슬픔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마
치 '숨겨진 하나님'(Hidden God)을 찾는 듯한 애절한 호소를 하고 있는데, 이것을  이
방인들이 '귀먹은 신'을 찾는 반복성의 주문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왕상18:20-29).
오히려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핍박'이라는 부조리한 상황의 지속에 대해 하나님의 구
속적 경륜을 이해하고 있는 시인의 애절한 탄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엄중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94:8-11)
   공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던 시인은 이제 피고에 해당하는 악인들
에게로 시야를 돌리고 있다. 시인은 전 단락에서 언급한 악인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조
목조목 질책하면서 악인들을 '우준한 자'와 '무지한 자'(8절)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
데 악인들에 대한 이런 혹평들은 전 단락의 고발에서 언급한 그들의 범행과 그 동기에
관련된 것이다. 즉  '우준한 자'라는 호칭은 그들의 잔인한  범행(6절)에서  기인하고
'무지한 자'라는 명칭은 이런 범행을 담대하게 행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7절).  결국
시인은 악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살해하는
범행을 서슴지 않았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귀'와 '눈'을 만드신 분이라고 말한다.  하나
님께서 천지만물과 육체를 모두 지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들만 언급한 이유는  하나
님께서 듣지도,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한다고 여겼던 악인의 잘못된 태도를  힐책하기
위함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언어와 행동과 사고를  감찰하시는  분이다
(11절). 아무리 은밀하게 행동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죄악들은 하나님 앞에서 적나라하
게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모든 삶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살전2:4)

        3.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신뢰(94:12-23)
   악인의 압제에 대한 비탄으로(3-7절) 시작한 본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신뢰를 노래 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보호가 드러나고 있는 단락은  1인내의 유용성(12-15절),  2하나님의 위로(16-19절)  3악인에 대한 엄중한  심판(20-23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인내의 유용성(12-15절):본 단락의 서두를 장식하는 본문에서는  불의한  상황의 지속적인 전개로 인한 비탄이나 격정의 감정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미 전  단락(8-11절)을 거치면서 시인의 시야는 '악인의 압제'에서 '하나님의  공의'에로  옮겨지고, 이제는 '악인의 압제'로 인한 환난의 유용성까지 발견할 수 있는 영적 평안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12절). 특히 여기서 시인은 첫 단락에서 언급한 악인의  압제(3-7절)를 '주의 징벌'(12절)로 여기고 있는데, 이러한 안목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거룩하게 단련시키기 위해 악인까지도 사용하신다는 섭리에 대한 철저한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14절). 이것은 욥기를 위시한 지혜 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주제이기도  하다(38:12-15;욥34:29;잠3:11, 12). 또한 시인은 환난이 주는 유용성을 언급하는  동시에 '공법이 물같이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될' 특징한 날을 고백하고 있다(15절). 이 날에는 의인이 거룩한 시험을 통과하여 정금 같은 신앙을 소유하게 되는 동시에  악인은 죄에 의해 처절한 심판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다.
   2 하나님의 위로에 대한 확신(16-19절):여기서 시이는 과거의  경험을  회고하면서(17,18절), 하나님의 위로에 대한 확신(16-19절):여기서 시인은 과거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17, 18절), 하나님의 위로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고 있다. 비록 자신이 처한  상황이 위급했고 이로 인해심령의 고통이 심중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방치하지 않으셨음을 고백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행악자의 악행을 무한정 허락하셨다면, 시인은 분명히 절망과 (17절) 완전한 패망(18절)에 이를 수밖에  없을것이다. 이러한 자각을 통하여 시인은 악인의 압제가 지속되는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확신할 수 있었다(19절). 이상에서 우리는 마음의 평안이란 일순간에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함으로써 얻게 되는 굳건한  믿음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3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20-23절):하나님의 위로에 대한 확신을  노래한 후에 이어서 시인은 '악인에 대한 엄격한 심판'을 말하고 있다. 마치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고 있는 듯한 시인의 찬양은 전분부에 나타난 비탄의 하소연(3-7절)과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악인에 대한 체험에서 비롯된 하소연(3-7절)과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와같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본  장을  마무리 짓고 있는 시인의 노래는, 반석되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체험에서 비롯된  고백으로서, 특별히 출애굽을 시기 동안 이스라엘의 공동체적  체험을  잘  반영하고  있다(신32:4, 15, 18, 30, 31, 33-38). 시인은 이스라엘을 민족 단위의  교회로서  부르신(출19:6)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과부와 나그네를 살해하는 악한 재판장의 반 언약적 행위들(anti-covenant acts)은 반드시 스스로 화를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23절). 사실 하나님의 청지기로 세움을 받은 재판장들이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고 자신에게 위임된 권위를 남용하고 오용한다면, 하나님과 분리되고(20절) 급기야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다. 결국 악인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적 분노(covenant wrath)로서, 이를 통해 여호와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키는 굳건한 산성이 되신다(22절). 시인은  이처럼 악인들이 비록 외적으로 번영하고 많은 축복을 누리는 것같이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멸망한다고 말하면서 본시를 맺는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경에서 악인들이 당할 심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악인의 결말        |  성경 구절   |    악인의 결말      | 성경구절 |      
+------------------------+--------------+---------------------+----------+      
| 평생 동안 고통 당함    |욥15:20;잠15:6|  거처가 사라짐      |  욥8:22  |      
|    빈곤하게 됨         |    욥27:14   | 망할 날을 기다림    |  욥21:30 |      
|    슬픔이 가득함       |    시32:10   |   후세대가 없음     |  시37:28 |      
|    이름이 지워짐       | 시9:5;잠10:7 |  영원히 망하게 됨   |  시92:7  |      
|  선한 자에게 굴복함    |잠14:19;말4:3 |늘 불안한 가운데 있음|  잠28:1  |      
|    부끄러움을 당함     |    잠13:5    |환난 때 죽음을 당함  |  잠14:32 |      
|     소망이 사라짐      |    잠10:30   |  어둠 가운데 행함   |  잠4:19  |      
|잘 되어도 그 기간이 짧음|    전 8:13   |    평안이 없음      |  사57:21 |      
+------------------------+--------------+---------------------+----------+      
   이상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끝까지 돌보신다(롬8:38, 39).  2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전12:14). 악인의 위용과 권세는 바람 앞에 겨와 같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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