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
본절은 원문에 의하면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은 감탄사 '호'( )로 시작되고 있는데, 본 감탄사는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중대 사안이 뒤에 따를 경우 사용된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 원문 직역은 '목마른 모든 자들아'이다. 여기 '모든'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칼'( )은 빈부 귀천 가릴 것 없는, 특히 이방인까지도 포함한 바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목마른'은 그 무엇을 강하게 소원하는, 특히 영적 구원을 그렇게 사모하는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시 42:2;63:1;143:6;요 7:37). 아마도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하셨을 때 바로 본 구절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마 5:6).
물로 나아오라 - 이미 본서는 메시야 시대 이후 존재하게 될 축복, 곧 영생을 암시함에 있어서 시내, 물줄기, 비와 같은 물을 소재로 한 이미지를 사용한 바 있다(35:6;43:20;44:3). 본서가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감탄사 '호'( )를 사용한 목적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특권이었던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그것도 값없이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같은 결과는 53장에 자세히 언급된 메시야의 구속 사역에 근거를 둔다.
포도주와 젖 - 생명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물뿐 아니라 활기와 영양을 공급하는 포도주와 우유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주는 축복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시사한다(아 5:1;요 7:37).
=====55:2
양식 아닌 ... 수고하느냐 - 문자적으로는, 인간은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풍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빵은 생명을 지탱케 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인간은 빵을 얻기 위해 돈을 버는데, 어리석은 인간은 빵 아닌 것을 사기 위해 헛되이 돈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구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육신을 살찌우는 빵이 아니라 영혼을 살찌우는 빵이다. 1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영혼을 살찌우는 빵은 인간의 노력으로 번 돈을 지불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그 대안을 하반절이 제시한다. 나를 ... 먹을 것이며 - 원문 직역은 '부지런히 나를 들으라 그리고 좋은 것을 먹으라'이다. 동등한 두 개의 명령문으로 보이나, 후자는 전자의 결과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으면 좋은 것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개역성경의 번역이 이 의미를 잘 드러낸 준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깨닫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육의 생명이 아닌 영의 생명을 얻게 됨을 의미한다.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 여기 '기름진 것'이란 성경에서 최고의 음식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창 27:28;시 65:11).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속을 경험한 자가 누리게 되는 부(富)와 풍성한 축복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시 63:5).
=====55:3
들아라 ... 영혼이 살리라 -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약속들을 포용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신앙은 흔히 영생을 얻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요 5:40;6:33;20:31;계 2:8-10).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 다윗을 그 모형으로 하는 메시야에 관한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 약속은 취소될 수도, 실패하게 될 수도 없는 약속이었다(삼하 7:15,16;시 89:2-4,28,29,34-36;고후 1:8-20). 여기 '은혜'( , 헤세드)는 언약적 용어로서 인애, 긍휼, 연민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여기서는 메시야의 대속사역, 그중에서도 메시야의 부활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그의 전도 여행 중 안디옥에서 행한 연설 중에서 이것을 증명하였다 :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행 13:34). 다윗이 하나님께 받았던 약속은 메시야가 고난당하여 죽임을 당하실 것이지만 끝내는 부활하여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약속이었다. 다윗은 이미 그의 시편들에서 메시야의 부활 사상을 암시한 바 있다(시 16편등).
=====55:4
그 - 다윗 혹은 메시야로 볼 수 있는데, 문맥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주인공(3절) 되신 메시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느느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속사역을 완성하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제시하실 분이시다. 구약 성경 자체도 이사실을 증거한다(렘 30:9;겔 34:23,24;37:24,25;호 3:5).
증거( , 에드) - 공적으로 충고하거나 증인들 앞에서 변론하는 자(Rosenmuller) 혹은 증인, 왕, 방백, 망령자, 율법 수여자 등을 뜻하기도 한다(잠 19:5-9). 메시야에게 적용되었으니 하나님의 법, 계획 등을 인간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인도자( , 나기드) - 갈대아역은 '왕'으로 번역한다. 메시야가 가르치고 전하는 분일 뿐 아니라 그 백성과 통치와 피통치의 관계를 맺고 있는 분임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메시야의 직분중 중요한 한 가지는 왕직이다.
명령자( , 메차웨) - 원문 직역은 '율법 수여자'이다. 메시야는 율법의 창안자이시기도 하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곧 절대적 규범이요 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55:5
네가 - 본 2인칭 주어를 메시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지만(Whybray), 그보다는 영적 이스라엘로 파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Delitzsch, G.W. Grogan). 다윗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게 확장되었다. 이런 측면에서도 다윗은 왕으로 오실 메시야의 예표가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메시야에 의해 통치될 영적 이스라엘의 영역은 다윗 왕국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계적 차원에 이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55:6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 이것은, 지금은 여호와를 만날 수 있을 만한 때임을 암시하는 반면, 때가 오면 그분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공고하고 있다. 영적 축복을 얻는 문제에 따르는 조건과 제한성에 대한 권고이다(시 32:6;마 25:1-13;요 7:34;8:21;고후 6:2;히 2:3;3:13,15). 물론 이 권고를 받을 대상은 포로된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인류이다.
부르라 - '하나님의 자비에 너 자신 전체를 던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신약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못박고 있다(롬 10:13). 본절은 일종의 동의어 반복이며, 하반절이 상반절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한 표현이다(Fausset).
=====55:7
악인 ... 불의한 자 - 이 둘은 그 정체를 규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동의적 평행구로 사용되고 있고 특히 후자의 경우 그 원어적 의미가 '범죄의 사람'이므로 둘 다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죄인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롬 3:23). 굳이 의미를 구분해보면 전자는 그 '행실'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이고, 후자는 스스로는 범죄자로 생각하지 않으나 그 내면적 실상이 죄악된 자를 가리킨다. 회개의 진행은 소극적인 변화인 '그의 행실을 버림으로'시작되어 적극적인 회개인 '여호와께로 돌아가', '여호와를 그의 하나님으로 섬기는'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55:8
본절은 여호와의 생각과 길이 우리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사실의 의미는 바로 앞절의 '용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개역 성경은 생략하고 있지만 원문에는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 '키'( )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 '너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풍성히 용서하시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낼 필요가 없다. 악인의 행실과 불의한 자의 생각은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방시은 용서받을 악인이나 불의한 자의 상태나 정도에 따라 좌우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시 25:11;롬 5:19).
=====55:9
본절은 앞절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 분명하다.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 만큼이나 하나님과 인간의 계획의 차이가 크다고 덧붙이는 본문은 다음과같은 구절들에서 뒷받침된다 :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 103:11),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시 57:10),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시 89:2). 이상의 구절들이 취하고 있는 사상은 동일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인간의 눈에 용서받을 수 없어 보이는 자가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55:10
저자는 6-9절에 언급한 내용에 확실성을 더하기 위하여 한 비유를 들고 있다. 그 비유의 내용은 척박한 토지에 비와 눈이 내려 옥토로 만들면 그 옥토는 열매를 내고 추수꾼은 파종하여 양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본절을 영적으로 고갈되어버린 인간의 마음으로, 비와 눈을 메시야 통치 시대 아래 부어질 성령으로 그리고 열매를 의로 각각 보고 있다. 말하자면 본절은 영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 이제 메시야 시대가 되면 성령을 받아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비유의 경우,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거리 하나하나의 의미보다는 그 내용 전체가 담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 이 비유가 드러내는 주제는, 하나님은 한번 발설한 말씀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성취를 보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한번 내려진 비나 눈은 반드시 그 열매를 낳는다는 알기 쉬운 자연의 이치를 통해 저자는 설명하고 이쓴다 것이다. 이 주제는 다음절에 잘 정리되어 있다.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 - 구체적으로 이 말씀은 앞문맥(7절)에 언급된 '용서'이다. 사막에 내린 비와 눈은 금방 흔적도 찾아보기 힘드나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듯이,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신 '용서'는 결국 성취되고 말 것이다. 이제 그 '용서' 사역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유대인과 더 나아가 유대인과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돌아올 이방인의 행렬을 통해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55:12
나아가며 ...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 이것은 1차적으로 세계 각처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아 본토로 귀환할 것을 가리키고,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을 포함한 택함받은 모든 백성들이 참지도자된신 메시야의 인도를 받아 영적 본토인 교회로 이끌림을 받을 것을 암시한다 : "야곱아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人數)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미 2:12,13). 산들과 ... 손바닥을 칠 것이며 -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에 대해 자녕니 동일한 기쁨의 환영을 표시하고 있다. 자연이 이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까닭은 인간의 죄가 제거될 때 갱신된 인간 세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자연계도 '허무'에서 구원받고 새롭게 갱신될 것이기 때문이다(시 98:8;롬 8:19-22).
=====55:13
잣나무 - 경건한 백성들을 가리킨다(60:13).
가시나무 - 사악한 자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삼하 23:6;미 7:4).
화석류 - 팔레스틴 지역, 특히 갈릴리 호수 부근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근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록수로서, 희거나 붉은 꽃은 향기가 짙다. 느헤미야는 초막절 축제를 위해 필요한 초막을 짓는 데 이 나무를 사용했다(느 8:15).
질려 - 황량한 비경작 지대의 상징으로 쓰였다(5:6).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 '이것'이란 자연계의 갱신뿐 아니라 본장에서 다루고 있는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복음에로의 초대, 용서 등을 가리킨다. 바로 그 같은 결과들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기념비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초정장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본장은 수난받는 종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
하고 있는 40-55장의 결론부(epilogue)에 해당된다. 저자는 인류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초청하고 있다. 즉, 회개하고 하나님께
로 돌아오는 자는 참된 민족을 얻으며 열방 중에 축복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사
야는 본장에서 포로 생활로 인해 지쳐 있는 백성들에게 위대한 복음을 제시하고 응답
을 요구함으로써 위대한 구원 사역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이스
라엘을 향한 초청을 다루고 있는 전반부(1-5절)와 (2) 온 인류를 향한 초청을 다루고
있는 후반부(6-13절)로 나눌 수 있다. 특별히 두 부분은 세 차례에 절박한 초청의 명
령, 즉 '나아오라', '오라', '사라'(1-3절), '찾으라', '부르라', '돌아오라'(6, 7절)
등을 서두로 한다. 그런데 동일한 명령의 반복이면서도 전자(1-3절)는 의도적 이탈의
우매성이 강조된 반면 후자(6, 7절)는 악함이 강조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한편, 40-55장을 제2의 이사야가 기록하였다고 주장하는 비평적인 학자들은 본장
이후에는 전혀 새로운 주제가 다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후의 장들에서도 여전
히 새 하늘과 새 땅(12, 13절)에 대한 예언과 계속된 반역과 범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는 점을 고려할 때(65:17;66:22) 타당성이 없다. 본서 전체는 일관성 있는 흐름을 가
지고 하나님의 인격과 구원 서역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장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스라엘과 온 인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초천이다. 저자는 먼저 흑심한 포로 생활로 육과 영이 아울러 곤고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초청한다(1절). 이어서 하나님을 모른 체 죄악을 범하고 있는 인류에게도 초청
의 손길을 확대한다(6, 7절). 그런데 이러한 초대는 예수님의 복음 전파 사역에 대한
예언이라고 볼 수 있다(막 1:2;눅 4:17-21).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초청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래서 잔치는 들어오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개방되었
다(마 22:1-14;눅 14:15-24). 이와 같은 초청(행 10:34, 35, 43;13:38)과 회개에 대한
요구(행 20:21)는 주님의 제자들에 의해 지속되었고, 결과적으로 복음이 온 땅에 편만
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이미 오래 전에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복음의 전파 사역을 예고하셨다.
이제 위대한 구원의 초청이 울려퍼지는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좀더 자세히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에 대한 초청(55:1-5)
53장에서는 종의 구속 사역이 드러나 있고, 54장에서는 종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
엘의 영광의 회복이 나타난다. 이제 본 단락에서는 앞에서 예비된 구원의 영광에 동참
하도록 호소한다. 이러한 문맥의 흐름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
에게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언약의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강력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1) 초
청(1, 2a절), (2)응답에 따르는 축복(2b절), (3) 초청(3a절), (4) 응답에 따르는 축복
(3b절-5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피초청자에게 약속된
축복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다.
(1)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이 그냥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다(1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독생자의 죽음을 통하여 무한한 값을 지불
해 놓으셨기 때문이다(53장;엡 2:8, 9). 저자는 이 사실을 물뿐만 아니라 생필품인
포도주와 우유를 거저 나누어 주는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눅 14:15-24).
(2)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격을 지닌다:금전을
지불하고 얻은 육적 양식과 음료는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
은 한번 먹거나 마시면 다시는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는 영적 양식이며 음료이다(2
절). 이런 관점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먹고도 죽은
만나와 같지 않으며(요 6:47-51) 자신이 주는 물은 한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요 4:13, 14).
(3)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영원하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반드시 구원할 것
이라고 다윗과 굳게 약속을 맺으셨다(42:6;44:8;54:10;렘 31:31;32:20;호 2:18-20).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탄생하고(삼하 7:12) 그의 보
좌에 앉되 영원히 그 권세를 누리며(시 89:2-5, 19-37) 백성들에게 평강과 행복을 준
다는 것이다(시 132:15-18). 하나님은 당신의 양속을 어기지 않으시고 반드시 성취하
신다.
(4) 하나님의 축복은 백성들의 자의적인 선택을 요구한다:본 단락에서는 '오라'라
는 초청 명령이 1절에 3번, 3절에 1번 나오고, '들으라'는 명령은 2, 3절에 각각 1번
씩 나온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축복의 수납 여부는 피초청자의 자발적 응답에 근거
함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오라' 혹은 '들으라'라는 명령없이 하나님이 모든 인
간은 자기 백성으로 삼으실 수는 없느냐고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은 왜 인간
을 로보트로 만들지 않았냐는 항변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스스로가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만드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존
엄하며 하나님과 교재할 수 있는 것이다.
2. 열방에 대한 초청(55:6-13)
전 단락(1-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초청한
선지자는 이제 본 단락에서 시야를 확대하여 온 인류를 향한 초청으로 나아가고 있
다. 특히 전 단락의 마지막 절(5절)에서 이스라엘에게 하락한 은혜의 약속(3, 4절)이
온 인류에게까지 파급됨을 암시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열방의 초청(6, 7절), (2) 믿을 만한 초청의 내용(8-11절), (3) 초청에 응
한 자를 위한 처소(12, 13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본 단락은 동일하게 초
청의 명령을 담고 있지만 전 단락과 비교할 때 몇가지 독특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1) 초청의 시기가 제한적임을 언급한다(6절):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기회
가 주어지지 않는다(61:2). 그러므로 은혜받을 만한 때를 놓치지 말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마 9:15;24:42-51;막 13:33;눅 12:35;요 3:29;히
10:37;계 19:7).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초청의 기회가 무산되고 오직 심판만이 전
개될 것이다. 이사야는 복음의 시기가 끝나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호소하고
있다.
(2) 구원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은혜로운 종의 구속 사역을 받아들어야 함을
강조한다(6, 7절):저자는 구원이 과거의 악한 행실과 생각의 처분과 같은 행위로 되어
지지 않고 오직 은혜에 근거한 선물로 주어짐을 강조하기 위해(엡 2:8, 9), 회개를 요
구하는 구절(7절)에 앞서 구속 사역의 은혜를 소개하는 것이다(6절).
(3) 축복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8-11절):저자는 이러한 사
실을 확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까)하나님은 인간의 상상
을 초월하는 탁월한 지혜를 소유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죄악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제한할 수 없다(8, 9절). (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아루어진 현실과 동일하다. 하나
님은 자신의 뜻에 대해서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실현하신다. 그러므로 용서해 주시겠다
는 하나님의 약속은 가장 확실한 축복의 증거이다(10. 11절).
(4) 구속 사역의 절정은 자녕 세계의 회복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한다(12, 13절):저
자는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자들의 기쁨과 평안 가운데서 살게 됨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황폐된 자연 세계의 회복을 묘사하고 있다. 구속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피조계에 적용된다. 인간이 타락하였을 때 나온 가시와 엉겅퀴(창 3:18)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식물로 대치되고, 산들과 나무조차 기쁨의 합창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에덴 동산의 상태를 연상케 하면서 종말론적 왕국의 모습을 암시해 준다. 결국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의 포괄성을 강조하면서 영광스러운 미래에 주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제시하면서 회개하고(렘 3:12;욜 2;12;행 2:38;3:19) 참된 구원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모든 선입견과 고집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세상에 줄 수 없는 참된 축복과 놀라운 구원을 소유하게 된다(25:6;시 36:8;63:5;고후 1:3;엡 1:3).
본절은 원문에 의하면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은 감탄사 '호'( )로 시작되고 있는데, 본 감탄사는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중대 사안이 뒤에 따를 경우 사용된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 원문 직역은 '목마른 모든 자들아'이다. 여기 '모든'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칼'( )은 빈부 귀천 가릴 것 없는, 특히 이방인까지도 포함한 바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목마른'은 그 무엇을 강하게 소원하는, 특히 영적 구원을 그렇게 사모하는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시 42:2;63:1;143:6;요 7:37). 아마도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하셨을 때 바로 본 구절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마 5:6).
물로 나아오라 - 이미 본서는 메시야 시대 이후 존재하게 될 축복, 곧 영생을 암시함에 있어서 시내, 물줄기, 비와 같은 물을 소재로 한 이미지를 사용한 바 있다(35:6;43:20;44:3). 본서가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감탄사 '호'( )를 사용한 목적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특권이었던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그것도 값없이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같은 결과는 53장에 자세히 언급된 메시야의 구속 사역에 근거를 둔다.
포도주와 젖 - 생명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물뿐 아니라 활기와 영양을 공급하는 포도주와 우유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주는 축복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시사한다(아 5:1;요 7:37).
=====55:2
양식 아닌 ... 수고하느냐 - 문자적으로는, 인간은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풍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빵은 생명을 지탱케 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인간은 빵을 얻기 위해 돈을 버는데, 어리석은 인간은 빵 아닌 것을 사기 위해 헛되이 돈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구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육신을 살찌우는 빵이 아니라 영혼을 살찌우는 빵이다. 1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영혼을 살찌우는 빵은 인간의 노력으로 번 돈을 지불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그 대안을 하반절이 제시한다. 나를 ... 먹을 것이며 - 원문 직역은 '부지런히 나를 들으라 그리고 좋은 것을 먹으라'이다. 동등한 두 개의 명령문으로 보이나, 후자는 전자의 결과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으면 좋은 것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개역성경의 번역이 이 의미를 잘 드러낸 준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깨닫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육의 생명이 아닌 영의 생명을 얻게 됨을 의미한다.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 여기 '기름진 것'이란 성경에서 최고의 음식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창 27:28;시 65:11).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속을 경험한 자가 누리게 되는 부(富)와 풍성한 축복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시 63:5).
=====55:3
들아라 ... 영혼이 살리라 -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약속들을 포용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신앙은 흔히 영생을 얻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요 5:40;6:33;20:31;계 2:8-10).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 다윗을 그 모형으로 하는 메시야에 관한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 약속은 취소될 수도, 실패하게 될 수도 없는 약속이었다(삼하 7:15,16;시 89:2-4,28,29,34-36;고후 1:8-20). 여기 '은혜'( , 헤세드)는 언약적 용어로서 인애, 긍휼, 연민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여기서는 메시야의 대속사역, 그중에서도 메시야의 부활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그의 전도 여행 중 안디옥에서 행한 연설 중에서 이것을 증명하였다 :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행 13:34). 다윗이 하나님께 받았던 약속은 메시야가 고난당하여 죽임을 당하실 것이지만 끝내는 부활하여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약속이었다. 다윗은 이미 그의 시편들에서 메시야의 부활 사상을 암시한 바 있다(시 16편등).
=====55:4
그 - 다윗 혹은 메시야로 볼 수 있는데, 문맥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주인공(3절) 되신 메시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느느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속사역을 완성하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제시하실 분이시다. 구약 성경 자체도 이사실을 증거한다(렘 30:9;겔 34:23,24;37:24,25;호 3:5).
증거( , 에드) - 공적으로 충고하거나 증인들 앞에서 변론하는 자(Rosenmuller) 혹은 증인, 왕, 방백, 망령자, 율법 수여자 등을 뜻하기도 한다(잠 19:5-9). 메시야에게 적용되었으니 하나님의 법, 계획 등을 인간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인도자( , 나기드) - 갈대아역은 '왕'으로 번역한다. 메시야가 가르치고 전하는 분일 뿐 아니라 그 백성과 통치와 피통치의 관계를 맺고 있는 분임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메시야의 직분중 중요한 한 가지는 왕직이다.
명령자( , 메차웨) - 원문 직역은 '율법 수여자'이다. 메시야는 율법의 창안자이시기도 하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곧 절대적 규범이요 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55:5
네가 - 본 2인칭 주어를 메시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지만(Whybray), 그보다는 영적 이스라엘로 파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Delitzsch, G.W. Grogan). 다윗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게 확장되었다. 이런 측면에서도 다윗은 왕으로 오실 메시야의 예표가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메시야에 의해 통치될 영적 이스라엘의 영역은 다윗 왕국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계적 차원에 이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55:6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 이것은, 지금은 여호와를 만날 수 있을 만한 때임을 암시하는 반면, 때가 오면 그분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공고하고 있다. 영적 축복을 얻는 문제에 따르는 조건과 제한성에 대한 권고이다(시 32:6;마 25:1-13;요 7:34;8:21;고후 6:2;히 2:3;3:13,15). 물론 이 권고를 받을 대상은 포로된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인류이다.
부르라 - '하나님의 자비에 너 자신 전체를 던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신약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못박고 있다(롬 10:13). 본절은 일종의 동의어 반복이며, 하반절이 상반절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한 표현이다(Fausset).
=====55:7
악인 ... 불의한 자 - 이 둘은 그 정체를 규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동의적 평행구로 사용되고 있고 특히 후자의 경우 그 원어적 의미가 '범죄의 사람'이므로 둘 다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죄인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롬 3:23). 굳이 의미를 구분해보면 전자는 그 '행실'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이고, 후자는 스스로는 범죄자로 생각하지 않으나 그 내면적 실상이 죄악된 자를 가리킨다. 회개의 진행은 소극적인 변화인 '그의 행실을 버림으로'시작되어 적극적인 회개인 '여호와께로 돌아가', '여호와를 그의 하나님으로 섬기는'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55:8
본절은 여호와의 생각과 길이 우리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사실의 의미는 바로 앞절의 '용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개역 성경은 생략하고 있지만 원문에는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 '키'( )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 '너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풍성히 용서하시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낼 필요가 없다. 악인의 행실과 불의한 자의 생각은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방시은 용서받을 악인이나 불의한 자의 상태나 정도에 따라 좌우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시 25:11;롬 5:19).
=====55:9
본절은 앞절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 분명하다.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 만큼이나 하나님과 인간의 계획의 차이가 크다고 덧붙이는 본문은 다음과같은 구절들에서 뒷받침된다 :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 103:11),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시 57:10),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시 89:2). 이상의 구절들이 취하고 있는 사상은 동일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인간의 눈에 용서받을 수 없어 보이는 자가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55:10
저자는 6-9절에 언급한 내용에 확실성을 더하기 위하여 한 비유를 들고 있다. 그 비유의 내용은 척박한 토지에 비와 눈이 내려 옥토로 만들면 그 옥토는 열매를 내고 추수꾼은 파종하여 양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본절을 영적으로 고갈되어버린 인간의 마음으로, 비와 눈을 메시야 통치 시대 아래 부어질 성령으로 그리고 열매를 의로 각각 보고 있다. 말하자면 본절은 영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 이제 메시야 시대가 되면 성령을 받아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비유의 경우,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거리 하나하나의 의미보다는 그 내용 전체가 담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 이 비유가 드러내는 주제는, 하나님은 한번 발설한 말씀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성취를 보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한번 내려진 비나 눈은 반드시 그 열매를 낳는다는 알기 쉬운 자연의 이치를 통해 저자는 설명하고 이쓴다 것이다. 이 주제는 다음절에 잘 정리되어 있다.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 - 구체적으로 이 말씀은 앞문맥(7절)에 언급된 '용서'이다. 사막에 내린 비와 눈은 금방 흔적도 찾아보기 힘드나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듯이,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신 '용서'는 결국 성취되고 말 것이다. 이제 그 '용서' 사역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유대인과 더 나아가 유대인과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돌아올 이방인의 행렬을 통해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55:12
나아가며 ...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 이것은 1차적으로 세계 각처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아 본토로 귀환할 것을 가리키고,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을 포함한 택함받은 모든 백성들이 참지도자된신 메시야의 인도를 받아 영적 본토인 교회로 이끌림을 받을 것을 암시한다 : "야곱아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人數)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미 2:12,13). 산들과 ... 손바닥을 칠 것이며 -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에 대해 자녕니 동일한 기쁨의 환영을 표시하고 있다. 자연이 이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까닭은 인간의 죄가 제거될 때 갱신된 인간 세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자연계도 '허무'에서 구원받고 새롭게 갱신될 것이기 때문이다(시 98:8;롬 8:19-22).
=====55:13
잣나무 - 경건한 백성들을 가리킨다(60:13).
가시나무 - 사악한 자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삼하 23:6;미 7:4).
화석류 - 팔레스틴 지역, 특히 갈릴리 호수 부근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근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록수로서, 희거나 붉은 꽃은 향기가 짙다. 느헤미야는 초막절 축제를 위해 필요한 초막을 짓는 데 이 나무를 사용했다(느 8:15).
질려 - 황량한 비경작 지대의 상징으로 쓰였다(5:6).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 '이것'이란 자연계의 갱신뿐 아니라 본장에서 다루고 있는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복음에로의 초대, 용서 등을 가리킨다. 바로 그 같은 결과들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기념비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초정장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본장은 수난받는 종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
하고 있는 40-55장의 결론부(epilogue)에 해당된다. 저자는 인류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초청하고 있다. 즉, 회개하고 하나님께
로 돌아오는 자는 참된 민족을 얻으며 열방 중에 축복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사
야는 본장에서 포로 생활로 인해 지쳐 있는 백성들에게 위대한 복음을 제시하고 응답
을 요구함으로써 위대한 구원 사역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이스
라엘을 향한 초청을 다루고 있는 전반부(1-5절)와 (2) 온 인류를 향한 초청을 다루고
있는 후반부(6-13절)로 나눌 수 있다. 특별히 두 부분은 세 차례에 절박한 초청의 명
령, 즉 '나아오라', '오라', '사라'(1-3절), '찾으라', '부르라', '돌아오라'(6, 7절)
등을 서두로 한다. 그런데 동일한 명령의 반복이면서도 전자(1-3절)는 의도적 이탈의
우매성이 강조된 반면 후자(6, 7절)는 악함이 강조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한편, 40-55장을 제2의 이사야가 기록하였다고 주장하는 비평적인 학자들은 본장
이후에는 전혀 새로운 주제가 다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후의 장들에서도 여전
히 새 하늘과 새 땅(12, 13절)에 대한 예언과 계속된 반역과 범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는 점을 고려할 때(65:17;66:22) 타당성이 없다. 본서 전체는 일관성 있는 흐름을 가
지고 하나님의 인격과 구원 서역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장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스라엘과 온 인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초천이다. 저자는 먼저 흑심한 포로 생활로 육과 영이 아울러 곤고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초청한다(1절). 이어서 하나님을 모른 체 죄악을 범하고 있는 인류에게도 초청
의 손길을 확대한다(6, 7절). 그런데 이러한 초대는 예수님의 복음 전파 사역에 대한
예언이라고 볼 수 있다(막 1:2;눅 4:17-21).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초청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래서 잔치는 들어오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개방되었
다(마 22:1-14;눅 14:15-24). 이와 같은 초청(행 10:34, 35, 43;13:38)과 회개에 대한
요구(행 20:21)는 주님의 제자들에 의해 지속되었고, 결과적으로 복음이 온 땅에 편만
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이미 오래 전에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복음의 전파 사역을 예고하셨다.
이제 위대한 구원의 초청이 울려퍼지는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좀더 자세히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에 대한 초청(55:1-5)
53장에서는 종의 구속 사역이 드러나 있고, 54장에서는 종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
엘의 영광의 회복이 나타난다. 이제 본 단락에서는 앞에서 예비된 구원의 영광에 동참
하도록 호소한다. 이러한 문맥의 흐름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
에게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언약의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강력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1) 초
청(1, 2a절), (2)응답에 따르는 축복(2b절), (3) 초청(3a절), (4) 응답에 따르는 축복
(3b절-5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피초청자에게 약속된
축복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다.
(1)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이 그냥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다(1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독생자의 죽음을 통하여 무한한 값을 지불
해 놓으셨기 때문이다(53장;엡 2:8, 9). 저자는 이 사실을 물뿐만 아니라 생필품인
포도주와 우유를 거저 나누어 주는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눅 14:15-24).
(2)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격을 지닌다:금전을
지불하고 얻은 육적 양식과 음료는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
은 한번 먹거나 마시면 다시는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는 영적 양식이며 음료이다(2
절). 이런 관점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먹고도 죽은
만나와 같지 않으며(요 6:47-51) 자신이 주는 물은 한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요 4:13, 14).
(3)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영원하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반드시 구원할 것
이라고 다윗과 굳게 약속을 맺으셨다(42:6;44:8;54:10;렘 31:31;32:20;호 2:18-20).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탄생하고(삼하 7:12) 그의 보
좌에 앉되 영원히 그 권세를 누리며(시 89:2-5, 19-37) 백성들에게 평강과 행복을 준
다는 것이다(시 132:15-18). 하나님은 당신의 양속을 어기지 않으시고 반드시 성취하
신다.
(4) 하나님의 축복은 백성들의 자의적인 선택을 요구한다:본 단락에서는 '오라'라
는 초청 명령이 1절에 3번, 3절에 1번 나오고, '들으라'는 명령은 2, 3절에 각각 1번
씩 나온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축복의 수납 여부는 피초청자의 자발적 응답에 근거
함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오라' 혹은 '들으라'라는 명령없이 하나님이 모든 인
간은 자기 백성으로 삼으실 수는 없느냐고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은 왜 인간
을 로보트로 만들지 않았냐는 항변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스스로가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만드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존
엄하며 하나님과 교재할 수 있는 것이다.
2. 열방에 대한 초청(55:6-13)
전 단락(1-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초청한
선지자는 이제 본 단락에서 시야를 확대하여 온 인류를 향한 초청으로 나아가고 있
다. 특히 전 단락의 마지막 절(5절)에서 이스라엘에게 하락한 은혜의 약속(3, 4절)이
온 인류에게까지 파급됨을 암시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열방의 초청(6, 7절), (2) 믿을 만한 초청의 내용(8-11절), (3) 초청에 응
한 자를 위한 처소(12, 13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본 단락은 동일하게 초
청의 명령을 담고 있지만 전 단락과 비교할 때 몇가지 독특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1) 초청의 시기가 제한적임을 언급한다(6절):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기회
가 주어지지 않는다(61:2). 그러므로 은혜받을 만한 때를 놓치지 말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마 9:15;24:42-51;막 13:33;눅 12:35;요 3:29;히
10:37;계 19:7).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초청의 기회가 무산되고 오직 심판만이 전
개될 것이다. 이사야는 복음의 시기가 끝나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호소하고
있다.
(2) 구원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은혜로운 종의 구속 사역을 받아들어야 함을
강조한다(6, 7절):저자는 구원이 과거의 악한 행실과 생각의 처분과 같은 행위로 되어
지지 않고 오직 은혜에 근거한 선물로 주어짐을 강조하기 위해(엡 2:8, 9), 회개를 요
구하는 구절(7절)에 앞서 구속 사역의 은혜를 소개하는 것이다(6절).
(3) 축복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8-11절):저자는 이러한 사
실을 확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까)하나님은 인간의 상상
을 초월하는 탁월한 지혜를 소유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죄악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제한할 수 없다(8, 9절). (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아루어진 현실과 동일하다. 하나
님은 자신의 뜻에 대해서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실현하신다. 그러므로 용서해 주시겠다
는 하나님의 약속은 가장 확실한 축복의 증거이다(10. 11절).
(4) 구속 사역의 절정은 자녕 세계의 회복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한다(12, 13절):저
자는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자들의 기쁨과 평안 가운데서 살게 됨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황폐된 자연 세계의 회복을 묘사하고 있다. 구속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피조계에 적용된다. 인간이 타락하였을 때 나온 가시와 엉겅퀴(창 3:18)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식물로 대치되고, 산들과 나무조차 기쁨의 합창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에덴 동산의 상태를 연상케 하면서 종말론적 왕국의 모습을 암시해 준다. 결국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의 포괄성을 강조하면서 영광스러운 미래에 주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제시하면서 회개하고(렘 3:12;욜 2;12;행 2:38;3:19) 참된 구원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모든 선입견과 고집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세상에 줄 수 없는 참된 축복과 놀라운 구원을 소유하게 된다(25:6;시 36:8;63:5;고후 1:3;엡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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