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의식 (레위기 16:1-4)
Ⅰ. 속죄일에 관한 율법이 선포된 일자가 언급되어 있다. 즉 "아론의 두 아들이 죽은 후에" 라고 했다(11절). 거기에 대해서는 10장 1절에 기록되어 있다.
1. 아론은 아직도 그의 집안에 어떤 죄가 남아 있거나 또는 그의 자녀들(제사장들은 죄지을 가능성이 그렇게 많으므로)이 그 후에 어떤 죄를 지어서 죽음으로써 자기의 집안이 멸망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의 집안 죄를 속죄하는 방법을 지시해 주시어서, 하나님이 그 집안을 지켜 주시리라는 것을 알리셨다. 죄를 속하는 것이 그 집안을 굳건히 세우는 일이요, 그 집안에 임할 축복을 지속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제사장들조차도 불합당하게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다가 죽었다면 다른 사람들이야 어떠하랴!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전혀 나아가지 않을 것이 아니라, 법칙에 따라 나아가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 때문에 죽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사 나머지 사람들은 죽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교훈을 주게 되는 것이다.
Ⅱ. 이 율법의 의도가 나타나 있다. 그 의도 중의 하나는, 회막내에 있는 지성소에 대한 경외감을 간직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지성소에는 세키나 곧 하나님의 영광이 구룹들 사이에 기꺼이 거하고 있었다. "아론에게 이르라, 무시(無時)로 성소에 들어오지 않게 하라" (2절). 그 회막 앞에는 제사장들 중 누군가가 매일 분향을 올리는 금 제단이 있었다. 그러나 그 회막 내에는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도 일 년에 한 번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것도 중요한 의식과 깊은 조심을 가지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특수한 임재를 나타내시는 그 곳은, 어디든지 저속한 곳이 될 수가 없다. 이 세상의 왕들이 거하는 소위 알현실(謁見室)이라는 곳에도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고, 왕비 자신도 그럴 수 없었다면(에 4:11), 하물며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께 그와 같은 신성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없겠는가?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일어난 변화는 얼마나 축복된 것인가를 깨달으라.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이 지금은 회막을 통과하여, 매일같이 "담대히 지성소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히 10:19, 20).
그리고 우리는 (아론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나아가야 했지만 그와는 달리) "은총과 보좌" 곧 속죄소에까지 "담대히 나아간다" (히 6:16).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의 현현이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나타나는 때에는 그러한 특별한 제한과 규제가 요구되어 있었다. 감각의 대상물이 그들에게 친근히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그들의 경외심이나 기쁨이 그만큼 줄어들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현현이 순전히 영적으로 나타나므로 달라진 것이다. 신앙의 대상과 더욱 친근히 교제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 자기들의 신중성과 선행을 많이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은 "손으로 지어지지 아니한 성소" (히 9:17)에 무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환영된다. 우리는 신앙에 의하여 "하늘의 처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엡 2:6). 당시의 아론은,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시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언제나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전과)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속죄소 위에 구름과 함께 나타나셨다. 그러나 지금은 어두운 구름 속으로가 아니라, 맑은 거울을 보듯이 얼굴을 대하고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된 것이다(고후 3:18).
Ⅲ. 이 날의 집무는 대제사장에게만 맡겨졌다. "그러므로 아론을 성소에 들어오게 하라" (3절). 그는 속죄일의 의식을 혼자서 직접 행해야 했다. 오직 한 사람의 제2인자, 곧 그를 대신하거나 보좌할 제사장이 한 사람 있었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아론이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으며 병이 생기거나 의식법상의 부정을 범하여 그날의 예식을 수행할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오늘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제사장이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대제사장이요, 그만이 속죄를 이룰 수 있으며 그에게는 보조자나 대치할 자가 필요치도 아니한 분이다.
Ⅳ. 대제사장은 이 예식에 맞는 옷을 입어야 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만 특유했던 값비싼 옷을 입으면 안되었었다. 진귀한 보석이 달려 있는 그 예복을 입지 말고, 오직 하급 제사장들과 마찬가지의 옷인 세마포 옷을 입으라고 했다(4절). 그러한 의복을 입어야 이 수치의 날(죄 때문에 스스로 금식했으므로)에 그에게 가장 잘 어울렸던 것이다. 또 그의 옷이 얇거나 가벼워야, 그만큼 자기의 손을 일일이 거쳐야 되는 그 날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보다 더 편리했을 것이다.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본성에 깃들어 있는 죄를 대속하시었다. 그러나 그만이 입는 특별히 영광스런 옷을 입고서 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죽을 형체를 입으셨으니, 곧 세마포 옷을 입고 행하신 것이요, 그것은 참으로 정결한 옷이었지만 비천한 옷(사람이라는) 이었다.
두 가지의 속죄제물 (레위기 16:5-14)
유대 학자들에 의하면, 속죄일 전 7일 간 대제사장은 자기 집을 떠나 성전에 있는 거실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 위대한 날의 예식을 위해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이 7일 동안에는 하급 제사장들이 하던 제사나 기타 분향하는 일들을 직접 수행하면서 이 날의 예식에 익숙해지도록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제도에 관한 율법을 읽고 또 읽어서, 그 예식법 전체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 그는 그 날 아침 일찍 평상시에 드리는 아침 제사를 드림으로써 그 예식을 시작하며 물론 그 예식 이전에 온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그의 손발을 다시 씻어야 했다. 그리고는 매일 드리는 분향을 드렸고, 등(잔)에 불을 붙이고 나서, 이 날을 위해 특별히 지시된 제사를 드렸다(여기에는 없지만 민수기 29:8 을 참조). 즉 수송아지와 수양과, 일곱 마리의 어린양들을 모두 번제로 드려야 했다. 이것은 그의 대제사장 복을 입고 거행했으리라고 볼 수 있다.이 본문에서 언급되어 있는 예물은 자기의 죄와 자기 집안의 죄를 엄숙히 고백하는 것이었고, 그 죄악의 용서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으리라. 이 제물에는 대제사장이 자기 손으로 안수해야 했었다.
3. 그리고 나서는 두 마리의 염소를 놓고 제비를 뽑아야 했다. 이 염소들은 (둘 다) 회중을 위한 하나의 속죄제물 이었다. 이 중의 한 마리 염소는 죽어야 했는데 그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를 위하여 드리는 보상의 표시이었다. 다른 한 마리는 추방당해야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의하여 죄가 용서되고 제거됨을 표시하는 징표이었다. 그 두 마리 염소는 제비를 뽑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함께 바쳐야(보여야) 했다(7절). 그리고 나서 속죄 염소(아사셀 염소)는 산채로 하나님께 두어 두라고 했다(10절).어떤 사람들은 이 염소들이 몸체가 작아 불쾌해서 죄의 불쾌감을 나타내 주므로 속죄 제물로 선택되었다고 본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당시에 이방인들이 염소 모양을 만들어 자기들의 신을 숭배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다시는 염소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염소를 희생 제물로 드리도록 했다고 본다.
4. 그 다음으로 할 일은 대제사장 자신과 자기 집안의 죄를 위해 드린 수송아지를 잡는 일이었다(11절). 유대인들은 이르기를, "이제 그는 수송아지를 다시 안수하고, 이미 했던 죄의 고백을 다시 하고 용서를 다시 빌면서 먼저 자기 자신과-자기가 먼저 하나님과 화해되지 못하고서야, 어찌 백성의 죄를 위한 속죄를 중재할 수 있으랴!-자기 집안의 죄 곧 식구들만이 아니라 아론의 집이라고 불리우는 모든 제사장들의 죄까지를 용서받아야 했다" 고 말한다(시 135:19). 이러한 순결은-거기에서 끝나고 말아서는 안 되지만-먼저 대제사장의 집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수송아지를 죽이고 나면, 그는 다른 어떤 제사장에게 그 (양의)피가 굳어지지 않도록 계속 휘저으라고 했다.
5. 그리고 나서, 한 손에는 향로(아직 연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접시를 들고서, 그 성막을 지나서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래서 법궤에로 나아가서 향로에 불을 피워 그 향기가 성소에 퍼지게 했다. 그러면 즉시 그 지성소의 실내는 연기로 가득차게 되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하는 법궤 위를 연기가 덮기까지는 법궤 쪽을 바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서 옆길로 지성소에 들어가며, 그 후에는 하나님의 존전에 대한 경외감 때문에 뒷걸음질하여 나와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잠시 기도한 후에 급히 성소에서 나와 백성 앞에 나타나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그들은 대제사장이 잘못하여 여호와 앞에서 죽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거둘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이 예식이 끝나면 그는 다시 지성소에서 나아와 피를 담은 그릇을 성소에 내려놓고, 거기서 물러 나왔다.
백성을 위한 속죄제 (레위기 16:15-19)
대제사장이 속죄소 앞에 수송아지의 피를 뿌리고 나와서,
1. 백성을 위해 속죄 제물로 드릴 염소를 잡고(15절), 3번째로 지성소에 들어가 먼저 번처럼 그 염소의 피를 뿌렸다. 그리하면 그는 "성소를 위하여 속죄를" 하는 것이 된다. 즉 백성들의 죄가 하나님의 분노를 유발시켜 하나님이 그들 중에 함께 계신다는 은혜의 임재를 나타내는 징표를 멀리 떠나게 만들었으므로, 성소조차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처로는 부적당하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그 죄로 인하여 속죄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백성들과 화해하셨던 하나님께서 계속 그들과 화해를 맺으시기 위해서였다.이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심령이 깨끗해야 할 필요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보이시고자 하셨다. 즉 하나님은 그 때, 단지 그렇게 불순하고 죄 많은 사람들의 한가운데 서 있기만 했던 그 회막조차도 속죄가 필요하다고 하신 것이다. 또한 저들이 드리는 헌신행위와 경건한 의식들조차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못마땅한 것이었음을 알려 주신 것이다. 그런 것을 위해서도 이러한 속죄가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하급 제사장들은 아무도 회막에 들어올 수 없다(17절). 다만 밖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회막 안에서 일하기에 부족하고 부적당한 자임을 고백해야 했던 것이다.
3. 그 다음에 대제사장은 수송아지 피와 염소 피를 얼마간 취하여, 함께 섞어서 여호와 앞에 있는 제단의 뿔에 발라야 했다(18, 19절). 분향 단에도 이 피를 발랐음이 분명한데, 그것은 그러한 명령이 밝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출 30:10).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지시는 대제사장을 번제단에 나아가 행하라고 한 지시로 본다 번제단도 여기서는 "여호와 앞에 있는 단" (12절)이라고 불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제사장에게 번제단으로 "나아가라" 고 했기 때문이며 그 번제단도 속죄가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예물과 제물은 모두 그 제단으로 가져 왔고, 그 제단은 여기에 나타난 대로 그들의 부정함에서 성결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속죄 염소 (레위기 16:20-28)
대제사장은 속죄물을 여호와께 드리고 그 피를 뿌렸다. 그리고는 아마 그 나머지의 피는 놋제단 밑에 부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속죄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백성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었다(20,21절). 어떤 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는다는 것에는, 언제나 죄의 고백이 동반되는 것이 제사의 본성이었다. 이 제사도 속죄제이므로, 죄의 고백이 따라와야 한다. 유대교의 비교적 후기의 타락된 시기에 가시는, 그들이 대제사장을 위해 일정한 고백 형식문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서 아무런 죄의 고백문도 처방해 주시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은 그 백성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을 정성껏 돌보고 있었으므로, 그에게는 어떤 형식문도 필요치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죄의 고백은 가능한 한 낱낱이 해야 된다. 즉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죄"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범한 모든 범죄" 를 고해야 했던 것이다. 한 가지 죄가 그 죄의 여러 가지 가중적인 사정에 따라서 여러 번 범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의 고백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주목하여,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 라고 말해야 할 뿐 아니라, 아간 처럼 "여차 여차한 죄를 지었나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수 7:20).
이렇게 죄를 고백함으로써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죄들을 그 염소의 머리에 두어야 했던 것이다. 즉 그러한 죄의 이행을 설정한 하나님의 명령을 신앙으로 준행함으로써, 대제사장은 죄인들이 받아야 할 처벌을 그 희생 제물에게 이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러한 명령을 내리시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정말 웃음거리, 아니 그 보다 하나님은 모독하는 처사였을 것이다.
2. 그 다음에 그 염소는 즉시 이 (광야로 추방하는) 일을 위하여 선별된 적합한 사람의 손에 끌리어 광야로 내 보내졌다. 즉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보내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깨끗이, 완전히 용서하시는 뜻으로 그 염소를 광야로 내어 보내셨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가 제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 염소가 그들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리라" 고 말씀하셨다(22절). 그 염소를 (광야에서) 풀어 주는 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발견되지 않으리라" (렘 50:20)는 것을 보여주는 한 표적이었다. 후기 유대인들은 붉은 천 한 조각을 그 속죄 염소의 뿔에 매고 다른 한 조각을 성전 문이나 염소를 놓아 준 곳에 있는 바위 꼭대기에 매어 두는 습관을 가졌다. 그리고서 그들은 그 붉은 실이 희게 바래지면, 이스라엘의 죄가 용서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네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어지리라" 는 말씀과 같다(사 1:18). 또 덧붙여 말하기를, 로마인들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전의 40년 동안은 그 붉은 천 조각이 조금도 변색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실체(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인하여 그림자(제사)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훌륭한 고백이다.
영원한 규례가 된 속죄일 (레위기 16:29-34)
Ⅰ. 여기에는 이 큰 제전에 대한 몇 가지 지시 사항이 부가되어 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제전을 지키라고 지정된 일자. 그 날은 매년 "제 7월의 제 10일" 에 지키라고 했다(29절). 제 7월이란 사실상으로 제 1월로 계산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녀를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낸 바로 그 달을 그 후로부터는 제 1월(정월)로 계산하고 그렇게 부르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자들은, 제 7월의 제 10일되는 날은 인류의 처음 시조들이 타락했던 날이므로 그들의 타락을 기억하면서 안식일로 지켰다고 한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이 날이 모세가 시내 산에서 마지막으로 내려온 그 날이요, 그 때에 모세는 새로운 법판을 들고 왔고, 모세의 얼굴에 광체가 나던 바로 그 날이라고 추정한다. 그래서 그 날은 이스라엘의 온 세대를 걸쳐서 지킬 속죄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금송아지 사건으로 지은 자기들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기억할진대, 회개를 하면 저들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유대 학자들은, 그 날이 그들의 영혼을 괴롭게 하는 날이므로, 그 날에는 성경까지도 저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읽지 않아야 했다고 말한다.
3. 이 제도의 영속성. "그것은 영원한 규례니라" (29, 34절). 그러므로 이 의식은 이 율법이 해소되든가 원형(그리스도)에 의해서 모형이 필요 없게 되는 그 때가 오기까지는, 결코 어느 해(年)이고 중단될 수 없는 것이었다. 죄를 계속 범하는 한, 우리는 계속하여 회개하고 속죄 받아야 한다.죄로 인하여 우리 영혼을 괴롭게 하라는 이 율법은, 영원한 율례이다. 그러므로 이 율법은 눈물과 한숨이 모두 사라지는 그 곳에 우리가 도착하기까지는 계속하여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사도는, 이 사실을 율법의 제사가 죄를 제거하고 그 죄에서 양심을 깨끗이 할 수 없는 불완전성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보았다. 즉 그것은 속죄일이 되면 "해마다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 이라고 했다(히 10:1-3). 제사를 매년 드려야 했다는 것은, 그 제사가 죄를 속하는 데에는 미약한 효력밖에 못 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속죄는 사실상 "그리스도의 몸으로 단 번에 드린 제사" 로만 가능한 것이다(히 7:27 참조). 또한 그 한 번으로 족하다. 이 제사는 반복될 필요가 없다.
Ⅱ. 이 모든 율법 속에 어떤 복음이 들어 있는지를 깨닫도록 하자.
1. 죄의 용서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 복음의 위대한 두 가지 특권이 상징되어 있다. 물론 그 두 가지는 모두 우리 주 예수의 중보에 힘입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아무도 대제사장이 속죄를 하는 동안 함께(성소에) 있지 못한다고 했다(17절). 그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홀로 포도즙틀을 밟고", "아무도 그와 함께 할 자가 없게"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사 63:3). 그러므로 그가 수난을 받을 때에는, "모든 제사들이 그를 버리고 도망갔던 것이다" (마 26:56). 만약 어떤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라가서 그와 함께 죽었다면 그들이 속죄하는 일을 도와 준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수난당하는 자가 강도밖에는 없었으나 그들은 그러한 의혹을 받을 만한 인물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제사장이 속죄한 구속의 범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과 제사장들과 그리고 "모든 백성을 위해" 속죄하라고 했다(33절). 그리스도의 사죄는 성직자들이나 일반 백성 모두의 "거룩한(그리고 거룩하지 아니한) 것의 죄악" 을 속해 준다. 우리가 제 의식들의 특전을 받고 거기에서 위로를 받고 혜택을 입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에 의한 것이다. 대제사장이 이룬 속죄는 이스라엘 회중에게만 국한되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는 유대인의 죄만이 아니라 온 이방 세계의 죄악도 위함이다.
또한 아론은 자기의 죄를 위해 먼저 제사를 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그는 자기의 속죄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죄를 고백해야 했다-에서, 역시 그리스도는 아론보다도 무한히 뛰어나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께서는 속죄를 필요로 하는 당신 자신의 죄가 없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러한 대제사장이 되었다" (히 7:26). 또한 그러므로 예수께서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은 물 속에 서서 "저들의 죄를 고백" 했지만(마 3:6), 그는 "물에서 곧장 나왔던" 것이니(마 3:16), 그는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그 속죄는 이스라엘의 죄를 그 염소의 머리에 옮겨 둠으로써 완성된다고 했다. 죄란 마땅히 버림받고 망각의 땅으로 쫓겨나야 한다. 그러나 그 처벌은 그들의 죄를 지고 가는 그 염소에게 이행되었던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 (사 63:6)을 우리 주 예수 (그분은 이 모든 그림자의 실체이시다)에게 담당시키셨다고 했다(벧전 2:24). 그리하여 그는 우리의 죄를 속하셨다. 즉 우리의 죄를 위한 제물이 되셨다(고후 5:21). 그는 수난당하시고 죽으셨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는 버림받으시고, 잠시 동안 잊혀지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가 버림받지 않으며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학자들은 우리 주 예수께서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바로 속죄일인 제 7월의 10일 이었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중보자로서 그의 직무에 임하셨다. 수세(受洗)후 즉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나가셨다" (마 4:1). 그것은 곧 무인지경에로 끌려가신 것이다.
둘째로, 이 의식의 결과로 이스라엘의 모든 죄과는 망각의 땅으로 옮겨졌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어린 양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 즉 친히 그 죄를 자기 몸에 지고 가신 것이다(요 1:29). 하나님이 죄를 용서할 때에는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시지 않으신다고 했다(히 8:12). 즉 "하나님의 등뒤로 죄를 던지시고" (사 38:17). "깊은 바다에 던져 버리신다" (미 7:9). 또한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그 죄를 멀리 가져가신다(시 103:12).
대제사장은 자신을 위해 먼저 중재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자기 가족, 그 후에 온 이스라엘을 위해 중재했으나 우리 주 예수는 요한복음 17장에 보면-이것은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드릴 중재의 전조이다. 자신을 먼저 하늘 아버지께 맡기고 다음에는 그의 집안에 사는 제자들을, 그 후에 그들의 말씀을 통하여 그를 믿는 모든 자들 곧 온 이스라엘을 하나님 아버지께 부탁하셨다. 이렇게 그의 예물의 용도와 의도에 관하여 언급하신 다음에 그는 즉시 붙잡히시어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러한 모든 뜻에 따라서 되어진 일들이다.
마지막으로 희년(禧年)에는, 자유를 선포하는 나팔 소리가 "속죄일" 이 끝날 때에 울러퍼지게 하라고 했다(25:9). 우리의 죄책이 사해졌고, 우리의 속박이 풀이었으며, 우리는 우리 집으로 돌아가리니,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와 중재에 힘입음이라. 이 속죄제물로 인하여 우리는 영혼의 안식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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