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과 지지를 받는 여호수아 (스가랴 3:1-7)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처음 정착할 때 제 1 대리자였던 여호수아가 있었다. 여기 포로기 이후에, 두 번째로 가나안에 정착하게 될 때에도 매우 활동적이었던 동명이인이 나온다. 예수도 그와 같은 이름이며, "구원자" 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은 둘다 오실 자의 상징이었다. 스가랴와 이야기하던 천사는 "그에게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보여 주었다." 이 예언자는 그를 자주 보았던 듯하다. 그래서 그 여호수아는 그에게 말했고, 그들 둘 사이에는 큰 친밀감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보통 육안으로는 오직 그 여호수아가 사람들 앞에 나타났던 그대로를 보았을 뿐이다. 만일 그가 어떻게 여호와 앞에 서는가를 알려 한다면, 환상으로 보아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이 예언자에게 보여졌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할 때 진실한 존재가 되나, 세상 사람의 눈에 나타날 때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즉 그리스도, 곧 아론의 반열에 속한 대제사장들까지도 거느리고 있는 천사들의 주님 앞에 섰다. 그는 그의 직임을 수행하고 천사들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려고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다." 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계시를 자문하려고 섰으니, 그는 대제사장으로서 그들의 대리자였다. 범죄와 부패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의 두 가지 커다란 방해물이다. 우리가 범한 죄의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치 않게 되었다. 우리 속에 거하는 죄의 세력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역겹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모두가 이 두 가지 때문에 위험에 빠져 있다. 여호수아는 바로 이 때문에 여기 있었으니,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다" (히 7:28). 또한, 양자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우리에게 "의와 성화" 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Ⅰ. 여호수아는 죄인으로 고소되지만, 의롭다함을 얻는다.
1. 심한 이의가 그에게 제기된다. "사탄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한다." "그에게 율법 노릇을 하는 대적은 사탄이다." 그는 검사나 증인이 서듯이 죄수의 오른쪽에, 그의 오른편에 선다. 악마는 형제의 고소자로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 이다(계 12:10).혹자는 이 대제사장이 많은 하급제사장들의 죄로 인해 고소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는 큰 죄를 지었다(스 9:12; 느 13:28). 하나님께서 제사장직을 재건하려고 하실 때, 사탄은 제사장들에게서 발견되는 죄를 통해서 거기에 반대하며, 그들을 지정된 영예에 무가치한 자들로 만든다. 우리가 사탄으로 하여금 우리에 대적하는 이점을 주며, 비난과 고소가 가능한 여지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우매함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만일 어떤 것, 특히 제사장들에 있어서 어떤 것이 빗나간다면, 사탄은 꼭 그것을 악화시켜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고야 말 것이다. 사탄은 "그를 대적하려고," 즉 그가 공공의 선을 위해 행하고 있는 봉사를 반대하려고 섰다. 그는 "그의 우편에" 섰고, 그를 실망시키고 그의 길에 어려움을 일으킨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고 그의 앞에 서거나 그의 권세를 받들기 위해 하나님 편에 설 때, 사탄의 교묘함과 이적이 온갖 반대를 감행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반대하는 자를 반대하자. 그러면 그가 우리로부터 도망할 것이다.
2. 승리적인 방어가 그를 위해 취해졌다(2절). "여호와께서(즉 주 예수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하셨다. 심판자가 바로 자기들의 친구인 성도들의 행복이여! 그들이 고소된 자는 그들의 후원자요, 보호자이며 옹호자이어서, 확실히 그들을 구해낼 것이다.Ⅱ. 여호수아는 더럽혀진 자로서 나타나지만, 정화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대변한다. 그래서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씻겨지고 성화되기까지는 모두가 "부정한" 자들과 같다. 이제 여기서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여호수아가 입고 나타났던 부정을 보자(3절). 그는 조잡할 뿐만 아니라 "더러운 옷을 입었으니," 이는 그의 직임의 위엄과 그의 일의 거룩함을 손상했다. 모세의 법에 의하면, 대제사장의 옷은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게" 되어 있었다(출 28:2). 그러나 여호수아 옷은 그에게 부끄러움과 경멸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 옷을 입고 "그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다." 그는 직무를 수행할 때 입는 깨끗한 세마포 옷을 못가졌다. 그러므로 이것은, 제사직이 가난하고 멸시받았으며, 비난을 받는다는 것 뿐 아니라, 거룩한 것에도 많은 허물이 있음을 암시한다.돌아온 유대인들은 그들이 어려움을 잘 참았으므로 죄를 불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죄가 그들 중에 하나님의 역사의 진보에 큰 방해였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이 우상 숭배를 떠났으므로 어떤 허물에 의해서도 참소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잘못된 많은 것들이 있음을 그들에게 보이셨다. 이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진보를 더디게 했다. 그들은 이웃하는 어떤 국가들보다 더 위험하다. 그들을 대적하여 싸우는 영적 원수들이 있었다.
갈대아 해석판에 의하면, "여호수아에게는 제사장들이 택하기에 합당하지 않는 아내들을 택한 아들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사실임을 발견한다(스 10:18). 또한 제사직에 있어서 잘못된 다른 일들이 있었던 것은 의심할 수 없다(말 2:1).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는" 것을 허락받았다. 비록 그의 자녀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행하지 않았으나, 제사장직의 언약이 깨어지지는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이 정직한 그의 백성을 관대히 대하시며, 그들의 여러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교제하는 것을 용인하신다는 점을 명심하자.
2. 그를 정하게 하기 위한 준비가 취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수종들며 자기를 기쁘시게 하려는 천사들에게, 여호수아를 더 나은 상태로 이전시키라고 명령했다. 여호수아는 그의 동정의 대상으로서, 더러운 옷을 걸치고 여호와 앞에 나왔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가 마땅히 품을 수도 있었을 분노가 아니라 연민을 가지고 은혜롭게 그를 쳐다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꺼려했으나, 그를 몰아 세우지 않고, 그 옷을 벗겼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제사장들로 택하신 자들을 은혜로 대하신다. 그는 그들과 그들의 죄 사이를 가르시사, 그들의 죄가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가르지 못하도록 하신다. 그는 죄인들과 화해하시는 것이지, 죄와 화해하는 것은 아니다.여기서 여호수아를 위하여 두 가지 일이 취해지는데, 이는 신자들 안에서 그들을 위해 역사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이중적 역사를 나타낸다.
여기서 갈아 입은 옷은 비싼 옷으로서, 절기 때에 입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거지같이 입었던 때와는 달리 사랑스럽게 보이리라. 거룩한 일을 감당하는 자들은 악을 그만둘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하는 것을 배우리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현명하고, 겸손하고, 근면하고 신실하게 만드실 것이며, 모든 선의 모본으로 삼으실 것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영혼의 제사장으로 삼으신 자들은 그의 의로우심의 흠없는 옷을 입고 그들에게 장식이 되는 그의 성령의 은혜와 함께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 (입혀지고 주입된) "성도의 의로움은" 깨끗하고 흰 훌륭한 세마포요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 가 성장할 때 입는 옷이다(계 19:8).
Ⅲ. 여호수아는 직임에서 쫓겨날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대신 그는 그 직임에 다시 임명되고, 세워진다. 그는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 충족한 은혜를 받았다. 그는 rectus in curia - 즉 법정에서 무죄선고를 받듯이, 그의 이전 명예와 신임을 회복했다.
1. 제사직의 면류관이 그에게 씌워진다(5절). 이는 특수한 경우에, 예언자의 요구에 따라 행해졌다. "내가 말하되, 그의 직임에 해당하는 명철로서,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하니라. 이제 그는 정하게 보이니, 또한 위대하게 보이도록 하소서. 그를 대제사장의 모든 옷으로 치장하소서." 하나님이 종교의 회복과 부흥을 꾀하실 때는, 그의 예언자들과 백성을 부추기사,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써 그것을 행하신다.스가랴는 천사들이 여호수아의 머리에 관을 씌우라는 명령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며, 그들은 곧 그렇게 했으며, "제사장의 옷을 그에게 입혔다." 아무도 이 명예를 스스로에게 돌리지 말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 에게 돌릴 것이다. 또 "여호와의 사자가 곁에 섰다." 즉 피조된 천사가 맡은 일을 감독하고 있었다. 그는 곁에 서서, 그것을 기꺼워하며, 그 일을 위하여 제시한 명령을 준수할 것을 결심하며 저 제사직에 계속 종사할 것을 확신한다.
2. 제사직의 계약은 그와 함께 갱신되니, 하나님의 "평화의 계약" 이라고 불리운다(민 25:12). 펨블(Pemble)씨는 그것을 "그의 직임의 특권" 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이 증인들 앞에서 그에게 선포되고 전달된다(6,7절). 여호와의 사자는 그를 직임에 맞게 보살펴 주고 그를 그것에 가담하게 한다. 그리고 비록 그가 "맹세로 제사장이 되지" 않았으나(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된 자에게 그 명예가 유보된다. 히 7:21), 그의 예형으로서, 그가 그의 직임을 맡은 기간의 엄숙한 공포와 더불어 기념된다.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수아에게 단언했다. 즉 만일 그가 그의 지위의 임무를 이행한다면, 그 직임과 보상을 누릴 것이라고 했다. 이제 다음을 주목하자.혹자는 이것을 영생의 약속으로 삼고, 미래 상태에 있어서의 그의 충성의 보답으로 삼는다. 하늘의 안식하는 장소인 왕궁일 뿐만 아니라 걸을 수 있는 장소, 곧 낙원이며 동산이다. 그리고 저 거룩하고 영화로운 공동체로 이룬 사회 속에서, 천사들 중에 길이 있다(겔 28:14 참조).
그리스도의 강림 예언 (스가랴 3:8-10)
다윗에게 주어졌던 약속들이 종종 조금씩 메시야의 약속으로 발전해 나아갔듯이(다윗의 왕국은 메시야의 왕국의 예형이었다), 여기서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약속은 즉시 높이 솟아, 멀리 앞으로 나아가 그리스도에게로 비약된다. 여호수아의 제사직은 그리스도의 한 그림자였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일반적으로 볼 때 아론의 제사직의 계열을 밟기 때문이요, 특별히 하늘과 땅 사이의 조응의 저 행복한 방법의 부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범죄와 포로됨으로 인해서 크게 중지되었었다. 그리스도는 여호수아와 같이, 죄인들과 고통받는 자들을 위하여, 죄와 진노 아래 있던 자들을 위해 중재코자 하시는 대제사장이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그리스도의 제사직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맞는 말이다. 그 까닭은 그의 제사직의 모든 공덕과, 교회에 대한 그의 가치와 유용성은 그리스도의 제사직에 의존해 있으며 또 거기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다음을 보자.
Ⅰ. 그리스도의 이 약속이 누구에게 지시되는가?(8절) "여호수아야! 이제 들으라. 너는 네게 속한 것을 기쁘게 들었다. 그러나 보라, 여호수아보다 더 큰 이가 가까이 있다. 그에 대하여 이제 들으라, 너와 나머지 제사장들,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 즉 네 발 앞에서 배우며 앉았으나 네가 네 동료들로 여겨야 하는 자들은(왜냐하면 모두가 네 형제들이니) 들으라, 대제사장과 모든 하급 제사장들은 이에 주목하라. 그들은 예표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표적" 곧 그리스도의 모형과 상징으로 세워졌다. 하나님께서 이제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을 위하여 주었던 것은 약속된 메시야의 강림에 대한 행복한 전조였으며, 즐거운 경이(이적)와 함께 주어졌다. 그리고 그 시대의 총명한 자들은 모두 그것을 그렇게 해석한 것이다. 혹은 그들은 그들의 홀로됨 때문에 "놀라는" 자들이요, 이상한 유의 사람으로 야유당하는 사람이니, 그 까닭은 그들이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기" (벧전 4:4) 때문이거나, 그들의 기이한 고난과 또 그것들로부터의 놀라운 구출 때문이다. 시편 71편 7절처럼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나이다." 그들은 "경이의 사람들" 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놀라움을 준다.
그들의 조건이 얼마나 행복하게 변경되었는가를 생각하고 놀란다. 하나님의 백성과 사역자들은, 많은 이유로, 놀라웁게 여겨지는 사람들이다. 대제사장과 그의 추종자들은 여기서(예언자와 그의 자녀로서, 사 8:18) 표적들과 경이들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놀라움은, 메시야가 오실 때, 곧 별들이 태양 빛에 의해 어둡게 될 때는, 그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은 놀라움(기묘자)이라고 불리울 것이기" 때문이다.
Ⅱ. 그 약속의 내용을 보자. 그것은 여러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것은 그들이 현재 종사하고 있는 성전 건축이라는 저 크고 선한 사업에 있어서,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보는 소망, 그리고 그와 그의 나라에 관련된 약속에 대한 믿음은 그들로 하여금 직면하는 곤란들을 뚫고 나가게 해 주었다.
1. 메시야께서 오시리라. "보라, 내가 내 종, 순(가지)을 나게 하리라." 그는 오랫동안 숨겨져 왔으나, 이제 때가 찼고, 그래서 세상으로 보내지며,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보내질 때가 가까왔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그를 보내시는 일을 착수하신다. 따라서 의심할 바 없이, 그는 그를 인정하시고, 또 그의 곁에 서시리라.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 그의 일에 고용되고, 그의 뜻에 순복하며, 전적으로 그의 영예와 영광에 헌신한다. 그는 순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4장 2절에서, "여호와의 싹(가지)" 이라고 불리어졌다. 또 이사야 11장 1절에서는, "이새의 줄기(뿌리)에서 나온 (가지)," 예레미야 23장 5절에서는 "한 의로운 가지," 예레미야 23장 15절에서는 "의의 순(가지)" 이라고 했다. 그의 시작은 작았다. 부드러운 순과 같았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는 큰 나무가 되고 땅을 가득 채울 것이다(사 53:2). 그는 우리의 모든 열매를 딸 순(가지)이다.그리고 그가 보내질 때, "일곱 눈이 그 위에 있을 것이라" 고 했다. 그의 아버지의 눈이 그를 보살피고, 특히 그가 고통당할 때 그를 보호하려고 그의 위에 놓였다. 그가 무덤에 묻혔을 때, 기초석이 땅 밑에 놓이듯이, 하늘의 눈들이 아직 그의 위에 있었고, 인간의 눈으로부터 매장되었으나, 하나님의 눈으로부터는 그렇지 아니하였다. 모든 예언자들과 구역 성도들의 눈들은 이 한 돌 위에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날을 보고 기뻐했다. 그가 "그것을 보고 기뻐했다." 모든 신도들의 눈도 그 위에 놓인다. 그들은 그를 바라보고 구원받았으니, 뱀에게 물린 이스라엘인들의 눈이 놋뱀 위에 머물렀던 것과 같다.
혹자는 이 "한 돌" 이 에스겔의 환상 중에 나오는 바퀴들이 가졌듯이, 그 속에 일곱 눈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교회의 유익을 위해 부여받았던 지혜와 지식의 완전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눈들이 땅을 이리저리 다닌다."
3. 하나님 자신이 그를 아름답게 할 것이며, 그에게 명예를 주실 것이다. "내가 새길 것을 새기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건축자들이 버린 이 돌은, 거칠고 볼품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닦고 부드럽게 하시며, 아니 오히려 그것을 조각하여 모든 건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퉁이의 머릿돌" 이 되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솜씨였다. 그리고 이 지혜의 풍족함은 그 조각이 완성되는 때 나타날 우리의 구속의 방안 속에서 나타난다. 이 돌은 비록 "기초" 를 위해 놓였으나 "귀중한 돌" 이다. 그리고 그 "조각" 은 대제사장의 흉패에 있는 보석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 이것은 "인을 새기듯" 보석 위에 "새겨진" 지파들의 이름이었다(출 28:21, 22). 그 흉패 속에는, 아론 앞에 놓여 있던 열두 돌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상실된 것 같다. 그러나 여호수아 앞에 그들 모두 만한 가치가 있는 한 돌이 있을 것이니,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이 귀중한 돌은 마치 일곱 눈을 가진 것처럼 빛날 것이다. 심판의 흉패로부터 나오는 섭리 속에 지혜와 명철의 완성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길 것을 새기리라!" 그는 그리스도에게 그의 모든 선택된 자들을 맡기실 것이며, 그는 그들의 대표로 나타날 것이며, 대제사장이 그의 흉패의 귀중한 돌들 위에 새겨진 이스라엘의 모든 이름과 더불어 여호와 앞에 나갈 때 하였듯이, 그들의 대리자로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통해 영광에 이를 남는 자를 그리스도에게 주셨을 때, 그때 그는 이 "귀한 돌" 에 "새길 것을 새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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